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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산업의 역사(한국방위산업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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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산업의 시련과 도전(19), 전두환 정권과 국방과학연구소의 구조조정

방산백서 제1부(19), Chapter 3 '방위산업의 시련과 도전'



방산전문 매체 '글로벌디펜스뉴스'는 '한국방위산업학회(회장 채우석)'가 지난 2년간 집필한 '방위산업 40년, 끝없는 도전의 역사' (이하 '방산백서')를 전 국민들에게 널리 보급하여 방위산업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래의 전문은 '방위산업 40년, 끝없는 도전의 역사' (이하 '방산백서')의 원문이며, 한국방위산업학회의 동의 하에 게재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자주국방을 위해 방산제품 개발에 참여한 민·관····연 관계자와 방산제품 시험 도중 부상 당하거나 순직하신 모든 분들께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제1부 요약>


제1부에서는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태동부터 현재의 방위산업에 이르기까지 방위산업과 관련된 주요사건과 이슈 중심으로 정리했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1960년대 말부터 있었던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주한미군 철수 등 한반도 안보환경의 불안정을 극복하고 자주국방을 실현하려는 의지와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창설하고 이어 한국의 최초 방위사업이라 할 수 있는 번개사업과 1차 율곡사업을 시작하여 짧은 기간에 미사일까지 개발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반이 된 중화학공업은 곧 방위산업을 위해 육성되었고 방위산업과 함께 발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미사일 개발이 중단되고 국방과학연구소가 축소되는 등 시련의 과정이 있었으나, 2・3차 율곡사업을 통해 방위산업의 기반이 다져지고, 한국형 정밀무기 개발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었다. 율곡감사는 방위사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고, 각 정부별로 이루어진 국방개혁과 획득제도 개선 및 방위력개선사업을 통해 방위산업은 내실을 다지면서 첨단화를 지향해왔다. 2006년 방위사업청의 설립으로 방위산업은 개방과 경쟁의 장(場)으로 진입하는 변혁을 겪게 되었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


Chapter 3 방위산업의 시련과 도전

3. 전두환 정권과 국방과학연구소의 구조조정

1979년 3월 5일 전두환 육군 소장이 보안사령관에 취임하면서 보안사에 방위산업 담당부서를 신설하고 방위산업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수시로 박 대통령에게 방위산업에 관한 비밀보고서를 작성하여 보고한 것으로 되어 있다. 취임하자마자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하여 자세히 보고를 받고는 “자주국방 의지와 기술에 감탄했다”고 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보안사 요원 10여 명을 국방과학연구소에 상주시켜서 동향을 파악하게 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서거하고 12・12사태 이후에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국보위를 창설하여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되면서 핵연료주기 개발계획과 미사일개발사업은 위기를 맞는다. 그는 비공개석상은 물론이고 공개석상에서도 “한국형 유도탄(백곰)은 엉터리이다. 미군 미사일에 페인트만 칠한 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소위 말하는 ‘가짜 유도탄’ 소동이다. 1980년 7월 1일 심문택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이 퇴직을 당하고 이튿날 서정욱 소장이 부임하면서 9월 2일 부로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정원을 2,770명에서 2,591명으로 감소시켰다. 그중에서 이경서 박사(부소장)와 강인구 박사 등 30여 명의 간부급 핵심요원을 포함하여 77명의 직원을 사회정화라는 명분으로 강제 퇴직시켰다. 1차 숙청이었다.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제5공화국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국방과학연구소는 백곰(K-1)의 후속으로 현무(K-2) 유도탄을 개발하여 시험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경서 박사의 퇴직으로 최호현 박사가 유도탄 개발의 총책임을 맡고 있었다. 1982년 10월 30일 현무 시험발사 당일에 합참의장이던 김윤호 대장이 시험장을 방문하여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시험발사에 참관했다.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그는 흥분하여 서정욱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에게 “밀어줄 테니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고, 관련자들에게 훈장을 받게 해주겠다고 말하고는 돌아갔다.

그러나 당시 미사일 개발자들의 말에 따르면, 김윤호 합참의장이 나중에 당시의 시험발사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하길래 가서 봤더니 막상 ‘한미협조가 안 되어서 사격을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 무슨 소리냐고 호통을 쳤더니, 그제야 자신이 없다고 실토하더라. 당장 서울로 올라와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니, 전 대통령이 ‘그렇지 않아도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 실력도 없는 사기꾼들이야. 당장 그 팀을 해산시키라’고 지시했다.”






그 직후인 1982년 11월에 김성진 씨가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면서 12월 29일까지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하여 1983년 1월 1일부터는 연구소 운영인력이 2,598명에서 1,759명으로 839명이 대폭 감소되었고, 그중에서 연구인력은 1,189명(전체의 67%)만 남게 되었다. 단위 부서의 수도 190개에서 121개로 축소되어 미사일 개발 분야를 중심으로 69개 부서가 없어졌다. 2차 숙청이 단행된 것이었다. 이경서 박사의 뒤를 이어 미사일 개발 책임을 맡았던 최호현 박사도 나갔다.

1985년 당시에 국방과학연구소의 연구원은 857명 수준을 유지했는데, 이는 1970년대 후반의 절반 수준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미국이 인정하지 않으면 정권의 정통성을 보장받기 어려웠다.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전두환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정권을 인정받기 위해 원자력연구소를 폐쇄하고 국방과학연구소규모를 반으로 줄이면서 미사일팀을 해체하는 조치를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전두환이 핵개발 포기를 약속했으며, “미국은 한국이 추진했던 자주국방계획과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전두환 정권의 출발을 용인해 주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1983년 10월 9일에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이 터졌다.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 대통령 일행이 북한 공작원이 설치한 폭탄 폭발로 서석준 부총리 등 고위관리 17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기백 합참의장만이 중상을 입고 살아났다. 이 일이 있은 직후에 국방과학연구소 구상회 박사는 윤성민 국방부 장관과 이기백 합참의장의 호출을 받고는 88올림픽 이전까지 유도무기를 개발하여 실전배치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과거 유도무기를 개발하던 핵심인물이 퇴직당하고 남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새로운 미사일 개발 책임은 구상회 박사가 맡게 되었다. 다행히도 K-2 유도탄의 설계도와 기술자료 및 중요 부품 재고가 남아 있어서 유도탄 개발을 재개하여 1년 반이 지난 1985년 봄에 시험발사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이 현무(K-2) 미사일이다. 백곰은 NHK-1으로 하고, 현무는 NHK-2로 명칭을 정했다. 현무 유도탄은 백곰과 형상은 같았지만, 내용은 상당히 달랐다. 백곰은 고정 발사대를 사용한 반면 현무는 이동형 발사대를 사용했고, 관성유도장치를 사용한 사격 후 망각(Fire & Forget) 방식이었다. 

현무도 백곰과 같이 2단 추진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1단 추진기관이 나이키 허큘리스처럼 4개였던 백곰과 달리, 현무는 1개의 대형 추진기관을 갖도록 개량되었다.148 1985년 9월에 전두환 대통령,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각 군 참모총장 등이 참관한 가운데 시험발사가 이루어졌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때 전 대통령은 “과거의 미사일은 미제(美製)에 페인트칠을 한 것이었는데, 이번 것은 진짜 국산 유도탄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저번 것이나 이번 것이나 모두 국산 유도탄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기술력이란 곧 기술인력의 보유 여부가 핵심이다.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을 계기로 유도무기개발사업은 재개되었지만, 한 번 흩어진 기술인력을 다시 모을 수는 없었다. 이후로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유도무기 개발은 다소 모멘텀을 잃었으나, 전략비익무기로 분류되어 지속적으로 개발은 이루어져왔고, 지대공유도무기, 함대함유도무기, 휴대용 유도무기, 대전차유도무기 등 다양한 종류의 유도무기 개발로 이어졌다.


< 전편 - 미사일 개발 >
< 다음편 - 획득환경과 제도의 변화 >


                                                < 연 재 순 서 >


PART 1 방위산업의 역사 / 서우덕 •16

Chapter 1 방위산업이 태동되기까지 •19

1. 1・21사태(김신조사건)•19
2. 미국 푸에블로호 납치사건•21
3.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23
4. 미군 정찰기 격추사건•24
5. 닉슨 독트린과 주한미군 철수•26
6. 자주국방과 방위산업: 불가피한 선택•29


Chapter 2 방위산업의 태동과 자주국방•31

1. 방위산업을 향한 첫발•31
2.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창설•35
3. 최초의 방위사업: 번개사업•47
4. 초기 방위산업 시설 및 공업단지•51
5. 방위산업 육성의 밑그림과 제도 구축•55
6. 우리나라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64
7. 율곡사업(‘국방 8개년 계획’)과 기본병기 국산화•81
8. 방산기술의 발전•90
9. 방산기술인력 양성•102
10.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설립•111



Chapter 3 방위산업의 시련과 도전•119

1. 핵개발•119
2. 미사일 개발•127
3. 전두환 정권과 국방과학연구소의 구조조정•141
4. 획득환경과 제도의 변화•144
5. 2차 율곡사업과 한국형 무기체계 개발•146


Chapter 4 방위산업의 안정과 성장•149

1. 3차 율곡사업과 첨단전력 확보•149
2. ‘818 군구조 개편’과 전력・획득조직 개편•151
3. 한국방위산업학회의 설립•153
4. 율곡사업 감사•158
5. 국외도입사업과 무기중개상•164
6.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의 방위력개선사업제도 개선•168


Chapter 5 방위산업의 경쟁과 도약•178

1. 국방획득제도개선과 방위사업청 신설•178
2. ‘국방개혁 2020’과 전력증강 방향•184
3. ‘국방개혁 307계획’•189
4. 방위산업 신경제성장 동력화•192
5. 업체 주관 개발의 활성화와 글로벌 도약의 시작•915
6. 방위사업의 투명성•198
7. 방위산업은 그래도 꿋꿋하다•201



PART 2 방위산업의 발전과 성과 / 서우덕.장삼열 •202

Chapter 1 방위산업 정책 및 제도의 변천•205

1. 방위산업 발전의 시대 구분•205
2. 역대 정부의 방산 육성정책•209
3. 국방획득조직의 변천•225
4. 국방획득 의사결정 기구의 변천•245
5. 방위사업수행체제의 발전•251
6. 방위산업 보호·육성정책•261
7. 방위산업의 개방 및 경쟁체제화•274


Chapter 2 분야별 방위산업 형성과 발전•283

1. 탄약 업체•283
2. 기동・화력장비 업체•288
3. 함정건조 역사와 함정 업체•296
4. 항공기 생산・정비 업체•308
5. 유도무기・로켓 업체•321
6. 통신장비 업체•327
7. 지휘통제(C4I)체계/전투체계 업체•333
8. 감시정찰 분야 업체•338
9. 화생방 분야 업체•344


Chapter 3 방위산업의 성과•346

1. 국산 명품 무기체계•346
2.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현황 및 위상•349
3. 방산수출•356
4. 방위산업의 기술파급 및 산업파급효과•360


Chapter 4 우리 방위산업의 특징과 발전 방향•372

1. 우리 방위산업의 특징•372
2. 방위산업 발전 방향과 전망•377



PART 3 국산 무기체계의 개발 / 신인호 •380

Chapter 1 소화기•383

1. 개인화기•383
2. K3 / K12 / K6 기관총•388
3. 유탄발사기와 소총의 복합화•393
4. 복합형 소총 - 세계 최초 개발•936
5. 특수목적 소총과 권총•399

Chapter 2 화력무기•402

1. 견인포•402
2. 자주포•408
3. 탄약운반장갑차•420
4. 박격포•423
5. 다연장로켓•428

Chapter 3 기동무기•432

1. 전차•432
2. 장갑차•450
3. 차륜형 장갑차•473
4. 상륙돌격장갑차•476

Chapter 4 함정•482
1. 수상함•482

Chapter 5 항공기•513

Chapter 6 유도무기•540

1. 지대지유도무기•540
2. 순항미사일•546
3. 스마트폭탄 KGGB•560
4. 어뢰•562

Chapter 7 방공무기•580

1. 대공포•580
2. 대공유도무기•589

Chapter 8 지휘통제 및 통신•601

1. 통신장비•601
2. 두뇌와 중추신경 C4I•613
3. 데이터링크 - 네트워크 중심 작전환경 구현•166

Chapter 9 무인체계•621

1. 로봇과 무인(無人)•622
2. 병사도 디지털 환경에 연동•628
3. 무인수상정 및 무인잠수정•631
4. 하늘의 로봇, 무인항공기•634
5. 경제성도 높이고 전투효과도 올린다•641

Chapter 10 감시정찰 및 전자전 무기체계•642

1. 전자전 체계 •643
2. 레이더 체계•646
3. 합성개구레이더(SAR) 체계•651
4. 전자광학/적외선(EO/IR) 센서•652
5. 수중감시체계•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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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주 의원, '국방비 불용액' 방산업체 지급 추진
‘신성장동력 방위산업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6월 27일(월)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날 세미나는 백승주 의원실(새누리당, 구미시 ‘갑’) 주최, 국회국방위원회·방위사업청·한국방위산업진흥회·한국방위산업학회 후원으로 개최되었다. 국회 국방위원장 김영우 의원은 “방위산업은 자기 나라를 자기 손으로 지키겠다는 국가적인 의지의 표현입니다.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극단적인 도발을 해오고 있고, 해외시장에서 우리 방산업체들이 경쟁해야 할 회사들은 너무 거대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방위산업이 신성장동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폭적인 관점과 혁신이 필요합니다. 오늘 나온 각종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은 “전쟁터 같은 세계 방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글로벌 방산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체격과 기술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방사청은 오늘 토론회에서 개진되는 의견들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여 방위산업이 신성장동력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밝혔다. 한국방위산업학회 채우석 회장은 ‘방위산업의 미래를 위한 패러다임 혁신‘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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