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전문 매체 '글로벌디펜스뉴스'는 '한국방위산업학회(회장 채우석)'가 지난 2년간 집필한 '방위산업 40년, 끝없는 도전의 역사' (이하 '방산백서')를 전 국민들에게 널리 보급하여 방위산업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래의 전문은 '방위산업 40년, 끝없는 도전의 역사' (이하 '방산백서')의 원문이며, 한국방위산업학회의 동의 하에 게재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자주국방을 위해 방산제품 개발에 참여한 민·관·군·산·학·연 관계자와 방산제품 시험 도중 부상 당하거나 순직하신 모든 분들께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제1부 요약>
제1부에서는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태동부터 현재의 방위산업에 이르기까지 방위산업과 관련된 주요사건과 이슈 중심으로 정리했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1960년대 말부터 있었던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주한미군 철수 등 한반도 안보환경의 불안정을 극복하고 자주국방을 실현하려는 의지와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창설하고 이어 한국의 최초 방위사업이라 할 수 있는 번개사업과 1차 율곡사업을 시작하여 짧은 기간에 미사일까지 개발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반이 된 중화학공업은 곧 방위산업을 위해 육성되었고 방위산업과 함께 발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미사일 개발이 중단되고 국방과학연구소가 축소되는 등 시련의 과정이 있었으나, 2・3차 율곡사업을 통해 방위산업의 기반이 다져지고, 한국형 정밀무기 개발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었다. 율곡감사는 방위사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고, 각 정부별로 이루어진 국방개혁과 획득제도 개선 및 방위력개선사업을 통해 방위산업은 내실을 다지면서 첨단화를 지향해왔다. 2006년 방위사업청의 설립으로 방위산업은 개방과 경쟁의 장(場)으로 진입하는 변혁을 겪게 되었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
Chapter 1 방위산업이 태동되기까지
5. 닉슨 독트린과 주한미군 철수
미국의 대(對)아시아 외교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알려주는 괌 독트린(Guam Doctrine)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방위의 1차적인 책임은 자국이 담당해야 한다. 미국은 다시는 아시아 대륙에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이었다. 이 닉슨 독트린은 주한미군의 철수로 이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에 반대하면서 선(先) 한국군 현대화를 주장했다. 한국군 현대화를 위한 지원액 증액, 추가 철군 불가, 남침 시 미군의 자동개입 등을 미국 측에 요구했다.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을 달성할 목적으로 한국이 ‘한국군 현대화 장기계획’을 수립하면 이를 돕겠다고 했다. 그 다음해인 1966년 3월에 미국은 ‘브라운 각서’로 이를 보장했다.
1970년 7월 5일경 마닐라에서 열린 베트남 참전 7개국 외상회의에 참석 중이던 최규하 당시 외무부 장관에게 미국의 로저스(William Rogers) 국무부 장관이 주한미군 2개 사단 중 1개 사단의 철수 방침을 통고했다. 7월 6일에는 포터(William Porter) 주한미대사가 정일권 총리를 방문하여 같은 내용을 통보했다. 1970년 8월 24일 애그뉴(Spiro Agnew) 미국 부통령이 특사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2박 3일을 머물렀다. 이때 박 대통령은 2차에 걸친 애그뉴와의 회담에서 2만 명 이상의 감군은 하지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또한 애그뉴 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입각한 한국방위와 추가 군사원조를 약속했다. 그에 따라 박 대통령은 ‘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 수립을 추진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협의하기 위한 한미고위급군사회담은 1970년 하반기부터 1971년 1월까지 바쁘게 진행되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주한미군이 철수하려면 한국군의 전투력 증강과 장비 현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합의 결과 1971년 2월 6일 최규하 외무장관과 포터 주한미대사의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이 공동성명에 의해 한국은 무기와 탄약의 국내생산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때 설치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는 현재까지 정례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미 7사단은 8・15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8일 한반도에 진주해 38선 이남에서 일본군 무장해제 임무를 수행했고, 한국 정부 수립과 국군 창설을 도운 뒤 1948년 일본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선봉부대로 참전함으로써 또다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9・28서울수복을 주도한 미 7사단은 북진을 계속해 그해 11월 한만 국경인 혜산진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했고, 이어 화천, 김화, 철원 등지의 격전을 통해 많은 피해를 감내하면서도 전선을 사수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동두천에 주둔하던 주한 미 7사단은 1971년 3월 27일 박 대통령이 참석한 이한(離韓) 고별행사를 치른 후 완전히 떠났고, 철수 후에 4월 2일 미 워싱턴(Washington)주 포트 루이스(Fort Lewis)에서 부대 창설 54년 만에 해체되었다.
전방의 서부전선을 맡고 있던 미 2사단이 7사단이 주둔하던 동두천 지역으로 이동하고 미 2사단
이 담당하던 전방의 서부전선은 한국군 1사단이 투입되어 판문점을 제외한 휴전선 155마일은 모두 한국군이 담당하게 되었다. 이로써 주한미군은 18년 만에 휴전선을 지키는 일선에서 물러나고, 주한미군의 총 병력도 6만 3,000명에서 4만 3,000명으로 감축되었다.
닉슨이 계속 집권했으면 2사단도 철수되었을 것인데, 1974년 8월 9일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Affair)으로 물러나고 후임으로 제럴드 포드(Gerald Ford)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포드 행정부는 더 이상 미군을 철수시키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1974년에 율곡계획을 수립하고서는 미국에 그 대강을 알려주고 지원(무기체계 판매)을 요청한 상태였다.
1975년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우리나라에서 생산할 능력이 없는 전차, 잠수함, 공격헬기, 전투기 등 공격용 무기는 한국에 팔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미군이 한국에서 빠져 나가면서 이럴 수 있느냐고 노발대발했다. 박 대통령은 1975년 8월 서울에서 열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를 앞두고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군이 독자적인 전력증강계획을 추진 중인데 4, 5년 후에는 미 지상군이 한국에 주둔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미 지상군은 한반도에서 나가도 된다. 그러니 우리에게 무기나 팔아라”라고 폭탄 발언을 했다. 제임스 슐레진저(James Schlesinger) 미 국방부 장관은 그해 8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 참석한 후 만찬 연설을 통해 “주한미군은 한국 방어만을 위해 주둔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으로서는 사활적인 이해관계(vital interest)가 달린 문제이므로 한반도에 계속 주둔한다. 그러니 나가라고 하지 말라”고 하면서 율곡계획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슐레진저 미 국방부 장관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 때 임명되어 제럴드 포드 대통령 때까지 재임하면서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부 장관과 노골적으로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다음은 슐레진저 미 국방부 장관 만찬 연설의 일부이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조선에 율곡이라는 위대한 분이 있었다. 이분은 국방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국방능력이 의지를 뒷받침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설파한 위대한 철학가이자 전략가이다. 율곡은 국방은 의지만으로는 안 되고 능력(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10만 양병론을 주창했다. 그로부터 200년 뒤 미국에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라는 위대한 분이 계셨다. 그는 율곡 선생과 같은 생각, 즉 국방 의지가 능력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로부터 200년 뒤 한국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다.”
박 대통령을 극찬한 슐레진저의 ‘200년 주기’ 연설은 1, 2주 전에 실린 《뉴욕 타임스》 인터뷰를 다분히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197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지미 카터(Jimmy Carter) 민주당 후보는 주한미군 철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대통령 취임 즉시 3단계 주한미군 철수안을
발표했다.
이 발표가 있은 후 한국 정부는 이 계획에 완강하게 반발했고, 미 의회와 미 국방부 역시 크게 반대하여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카터 대통령은 1979년 6월 한국을 방문하면서 이 계획을 완전히 백지화했다.
< 전편 - 미군 정찰기 격추사건 >
< 다음편 - 자주국방과 방위산업 : 불가피한 선택 >
< 연 재 순 서 >
PART 1 방위산업의 역사 / 서우덕 •16
Chapter 1 방위산업이 태동되기까지 •19
1. 1・21사태(김신조사건)•19
2. 미국 푸에블로호 납치사건•21
3.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23
4. 미군 정찰기 격추사건•24
5. 닉슨 독트린과 주한미군 철수•26
6. 자주국방과 방위산업: 불가피한 선택•29
Chapter 2 방위산업의 태동과 자주국방•31
1. 방위산업을 향한 첫발•31
2.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창설•35
3. 최초의 방위사업: 번개사업•47
4. 초기 방위산업 시설 및 공업단지•51
5. 방위산업 육성의 밑그림과 제도 구축•55
6. 우리나라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64
7. 율곡사업(‘국방 8개년 계획’)과 기본병기 국산화•81
8. 방산기술의 발전•90
9. 방산기술인력 양성•102
10.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설립•111
Chapter 3 방위산업의 시련과 도전•119
1. 핵개발•119
2. 미사일 개발•127
3. 전두환 정권과 국방과학연구소의 구조조정•141
4. 획득환경과 제도의 변화•144
5. 2차 율곡사업과 한국형 무기체계 개발•146
Chapter 4 방위산업의 안정과 성장•149
1. 3차 율곡사업과 첨단전력 확보•149
2. ‘818 군구조 개편’과 전력・획득조직 개편•151
3. 한국방위산업학회의 설립•153
4. 율곡사업 감사•158
5. 국외도입사업과 무기중개상•164
6.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의 방위력개선사업제도 개선•168
Chapter 5 방위산업의 경쟁과 도약•178
1. 국방획득제도개선과 방위사업청 신설•178
2. ‘국방개혁 2020’과 전력증강 방향•184
3. ‘국방개혁 307계획’•189
4. 방위산업 신경제성장 동력화•192
5. 업체 주관 개발의 활성화와 글로벌 도약의 시작•915
6. 방위사업의 투명성•198
7. 방위산업은 그래도 꿋꿋하다•201
PART 2 방위산업의 발전과 성과 / 서우덕.장삼열 •202
Chapter 1 방위산업 정책 및 제도의 변천•205
1. 방위산업 발전의 시대 구분•205
2. 역대 정부의 방산 육성정책•209
3. 국방획득조직의 변천•225
4. 국방획득 의사결정 기구의 변천•245
5. 방위사업수행체제의 발전•251
6. 방위산업 보호·육성정책•261
7. 방위산업의 개방 및 경쟁체제화•274
Chapter 2 분야별 방위산업 형성과 발전•283
1. 탄약 업체•283
2. 기동・화력장비 업체•288
3. 함정건조 역사와 함정 업체•296
4. 항공기 생산・정비 업체•308
5. 유도무기・로켓 업체•321
6. 통신장비 업체•327
7. 지휘통제(C4I)체계/전투체계 업체•333
8. 감시정찰 분야 업체•338
9. 화생방 분야 업체•344
Chapter 3 방위산업의 성과•346
1. 국산 명품 무기체계•346
2.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현황 및 위상•349
3. 방산수출•356
4. 방위산업의 기술파급 및 산업파급효과•360
Chapter 4 우리 방위산업의 특징과 발전 방향•372
1. 우리 방위산업의 특징•372
2. 방위산업 발전 방향과 전망•377
PART 3 국산 무기체계의 개발 / 신인호 •380
Chapter 1 소화기•383
1. 개인화기•383
2. K3 / K12 / K6 기관총•388
3. 유탄발사기와 소총의 복합화•393
4. 복합형 소총 - 세계 최초 개발•936
5. 특수목적 소총과 권총•399
Chapter 2 화력무기•402
1. 견인포•402
2. 자주포•408
3. 탄약운반장갑차•420
4. 박격포•423
5. 다연장로켓•428
Chapter 3 기동무기•432
1. 전차•432
2. 장갑차•450
3. 차륜형 장갑차•473
4. 상륙돌격장갑차•476
Chapter 4 함정•482
1. 수상함•482
Chapter 5 항공기•513
Chapter 6 유도무기•540
1. 지대지유도무기•540
2. 순항미사일•546
3. 스마트폭탄 KGGB•560
4. 어뢰•562
Chapter 7 방공무기•580
1. 대공포•580
2. 대공유도무기•589
Chapter 8 지휘통제 및 통신•601
1. 통신장비•601
2. 두뇌와 중추신경 C4I•613
3. 데이터링크 - 네트워크 중심 작전환경 구현•166
Chapter 9 무인체계•621
1. 로봇과 무인(無人)•622
2. 병사도 디지털 환경에 연동•628
3. 무인수상정 및 무인잠수정•631
4. 하늘의 로봇, 무인항공기•634
5. 경제성도 높이고 전투효과도 올린다•641
Chapter 10 감시정찰 및 전자전 무기체계•642
1. 전자전 체계 •643
2. 레이더 체계•646
3. 합성개구레이더(SAR) 체계•651
4. 전자광학/적외선(EO/IR) 센서•652
5. 수중감시체계•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