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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방위산업으로 한국 현대화를 달성하다

자랑스러운 방산인 ② 박정희 대통령



1968년 1월 13일 북한은 김신조 등 31명을 남한으로 급파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우리 경찰에 의해 사전에 적발된다. 또 1968년 1월 23일 북한은 동해에서 정보수집을 하던 미 해군의 푸에블로함을 납치한다. 또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북한의 무장공비 120명이 울진·삼척 지역으로 침투하였다. 게다가 1969년 4월 15일 미군의 정찰기가 북한에 의해서 격추되었다. 이런 북한의 침공과 더불어 미국은 1970년 7월 5일 한국정부에 주한미군 2개 사단 중 1개 사단을 철수하겠다는 통보를 하였다. 이른바 ‘닉슨독트린’으로 실제로 후에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하였다. 

이런 국내외적인 안보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미국에 의지한 채 ‘선(先)경제개발, 후(後)자주국방’을 추진하겠다던 정책을 바꾸어 자주국방을 우선과제로 채택한다. 1970년 4월 25일 박 대통령은 방위산업 추진 전략에 대한 구상을 밝히면서 ‘민수산업의 육성 보안을 통한 방위산업의 기반구축’을 강조하였다. 이어 각 군에 흩어져 있었던 무기개발 연구소를 하나로 모아 1970년 8월 6일에 국방과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또 ‘기계공업육성방안’을 보고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기획원을 통해 주물선(鑄物銑)공장, 특수강공장, 중기계공장, 조선소의 ‘4대 핵(Core)공장’ 건설을 지시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미국과 일본의 비협조로 제대로 진전이 없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제2비서실을 신설하고 1971년 11월 10일 오원철 차관보를 경제제2비서실 수석비서관에 임명하고 방위산업 및 중화학공업 육성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려은 ‘번개불처럼 빨리 무기를 만들라’는 의미로 1971년 11월 10일에 국방과학연구소에 ‘번개사업’을 지시하였다. 소총, 기관총, 박격포, 수류탄, 3.5인치 로켓발사기, 지뢰 등 기본 병기를 1971년 12월 말까지 완성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의 건물도 없었고, 설계도도 없었으며, 오직 연구원들의 ‘부국강병(富國强兵)’에 대한 열정뿐이었다.

이렇게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이 진행된 ‘번개사업’은 성공적으로 종료되었고, 2차 및 3차 ‘번개사업’으로 이어졌다. 예비군 20사단을 경무장시킬 수 있는 무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중화학공업 진출을 선언하게 된다. 박정희 정부는 중화학공업과 ‘율곡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2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쉽게 설명하면, 함정을 건조하기 위해서 조선소를 건설했고, 전차 및 군용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서 자동차공장 및 전자산업단지를 건설하였다. 또 탄약을 생산하기 위해서 화학공장을, 이 모든 장비들을 만들 수 있는 철을 공급하기 위해서 포항제철을 건설한 것이다. 또 공장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 전국에 다목적 댐을 건설하였다. 게다가 이렇게 건설된 공장에 기술자를 공급하기 위해서 전국에 공업계 고등학교를 설립하여 농촌의 실업자들을 기술자로 육성하였다. 이들은 정말 전투하듯이 근무를 했기에 ‘산업전선’, ‘산업전사’란 말들이 유행하였다. 이들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중산층으로 성장하였다. 

북한이 군사장비 생산에 모든 역량을 쏟은 반면, 박정희 정부는 민수용 제품 생산에 90%, 방산제품 생산에 약 10%의 역량을 배분하여 투입하였다. 현재 각 대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방산관련 계열사들이 대기업 전체규모의 1/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서 대대적으로 투자된 중화학공업은 1980년대 ‘3저 호황’과 맞물리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경제적인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1988년 ‘88서울 올림픽’을 치르게 된다. 이 올림픽에 동구권 국가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구소련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였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북한은 88서울올림픽을 능가하는 행사를 치르겠다고 벼르고서 행사를 준비하였으나, 너무 많은 경제력을 탕진한 나머지 1990년대에 들어서 북한 주민 300만 명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풍전등화와 같았던 위기의 대한민국을 박정희 대통령은 방위산업 육성을 통해서 경공업과 중화학공업 터전을 동시에 닦았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내었던 것이다. 방위산업은 대한민국의 산업화 및 근현대화를 이끌었고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방위산업으로 일어선 대한민국, 이제 다시 방위산업으로 도약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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