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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중국과 이탈리아의 비극적인 관계

팬데믹은 세계화의 종말을 가져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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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JBPRESS에 겐매니지먼트 대표로 있는 사토 겐이치의 される中国とイタリアの悲劇的濃厚接触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이번 코로나 감염사태를 통해서, 이탈리아와 중국과의 역사적 관계를 조명했다. 팬데믹 이후 세계는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그의 글 전문이다.


 

 「一帯一路」 각서를 체결하는 두 정상 2019.3.33(사진=ZUMA Press)




이탈리아의 폭발적인 감염의 확산이 멈추지 않는다

 


20201월 말, 이탈리아에서 최초를 우한폐렴이 확인된 것이 우한에서 여행 온 중국인부부였다고 한다. 그것만으로 지금의 폭발적인 확산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우한폐렴의 검사체제가 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의료붕괴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우선순위에 따라 중증자 중심으로 방역체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사태세가 정비된 한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오히려 환자들이 밀려들어 의료붕괴의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확산을 막기 위해 비상사태선언과 함께 전국이 봉쇄되기에 이르렀다. 국외로의 입출국이 금지되었고, 국내에서도 이동이 제한되었다. 과연 누가 이런 사태를 예견이라도 할 수 있었는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최초 발생된 우한은 도시가 봉쇄되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봉쇄가 된 것은 이탈리아가 처음일 것이다. 이후 스페인, 프랑스, 독일 순으로 봉쇄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21세기의 중국과 이탈리아의 밀접한 관계

 

 


이탈리아에서 이렇게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재정악화에 의한 예산삭감으로 의료인들이 부족했다.

 

이탈리아는 20193, G7국가중 처음으로 중국의 일대일로정책에 참여하는 각서를 체결하였고, 그것이 민간 레벨에도 확산되어 경제적으로 서로 의존관계가 심화되고 있었다.

 

중국과 이탈리아 양국은, 2020년을 문화 및 관광을 촉진하는 해로 정하고, 1월에 로마에선 기념행사가 열렸다.

 

2019, 이탈리아를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수는 600만명이 넘었다는 통계도 있다.

 

이탈리아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인이 40만이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이나 봉제산업이 중국인 이민자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이탈리아를 유럽에 있어서 일대일로의 시발점(始発点)으로 보고 있다. 경제가 약체화 된 이탈리아는 중국의 투자와 소비를 환영하고 있다. 양국이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 이번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중국은 확산일로에 있는 이탈리아나 이란 등에 의료인들을 파견하고 있다. 선의를 가장하여 상대방의 약점을 후려치는 이러한 기술은 역시 중국공산당다운 행동으로 보인다.

 

 

 

중국와 이탈리아의 밀접한 관계는 14세기에도 있었다

 

 

 

대학시절 중세 프랑스의 유대인 경제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졸업논문을 제출한 적이 있는 나는 14세기 유럽을 휘쓴 흑사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흑사병의 잠복기간은 2일에서 7일 정도로, 권태감이 전신에 몰려오기 시작하여 몸살과 함께 39~40도의 고열이 생긴다. 대부분이 페스트로, 림파선 붓고 서혜부(鼠径部,아랫 배의 양측과 허벅다리와의 사이)에 주먹만한 멍울이 생겨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그대로 사망하게 된다,

 

 

14세기의 흑사병은 원래 중국에서 발생한 페스트균이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사람의 이동과 함께 유럽과 지중해 지역에 감역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개가 된 것이 쥐 등의 설치류라고 알려져 있으나, 벼룩이나 이 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페스트균에 의한 감염이 아니고 바이러스 출혈증이라는 설도 있으나, 어찌됐든 인간의 이동과 함께 감염이 확산된 것임은 분명하다. 1348년 유럽에 상륙한 감염증 확산은 17세기가 되어서야 종식되었다. 추계 50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그 중 절반은 유럽인들이였다. 그 중에서도 섬나라인 영국에서는 인구의 3분의 1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그 흑사병이 유럽에서 최초로 상륙한 곳이 바로 이탈리아

 

 

흑사병은 이탈리아 항구도시 메시나로부터 전파되었다. 흑해의 페오도시아로부터의 무역선이 감염의 매개체인 사람과 쥐들과 함께 유럽전역에 확산시켰던 것이다.

 

 

흑사병이 중국에서 발생하여 이탈리아를 중개하여 유럽전역에 확산시킨 것은 지금의 신종 코로나와 비교해 극히 흡사하지 않는가. 물론 당시에는 통일 이탈리아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베네치아나 제노바로 대표되는 도시국가가 경제를 주도했던 점, 그리고 그러한 도시국가들이 당시 중국(원나라)과의 밀접한 경제관계가 있었다는 점 등은 지금과도 매우 흡사하다.

 

 

팍스 몽골리아 시대의 세계화(GLOBALIZATION)

 

 

이런 14세기 팬데믹 현상에 대해서도, 그 시대에도 나름의 세계화가 진전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중국과 이탈리아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13세기에서 14세기는 팍스 몽골리아(몽골에 의한 평화) 시대였다.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몽골제국의 존재가 육로를 통한 동서교역을 활성화시켰고, 나름 세계화(GLOBALIZATION)로 보아야하는 현상이 실현되였다.

 

 

그 상징이 바로 노구교(盧溝橋, 베이징 서남 교외의 용띵허(永定河) 상에 있는 다리). 별칭, 마르코 폴로 다리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노구교(盧溝橋=마르코 폴로 다리) (출처=위키피디아)


 

13세기엔 교통망의 발달로 동서양이 육로(편도)7~8개월 정도로 단축되고, 게다가 24시간 통행가능한 안전이 확보된 도로도 있었다. 베네치아 등의 도시국가에서는 상인 뿐만아이라 선교목적으로 북경에까지 왔다. 북경에는 카톨릭교회가 만들어지고,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고자 로마교황청은 몽골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몽골인들이 바티칸에 찾아 올 정도였다.

 

 

 ▲동방견문록(사진=동양문고 박물관에서 필자촬영)


  

중국에 남아있는 이탈리아의 흔적이 노구교라고 한다면, 이탈리아에 남아있는 중국의 흔적은 지오토로 대표되는 초기 르네상스의 작품일 것이다. 13세기에 활약한 지오토의 작품에는 동양인처럼 보이는 외관으로 파스파문자처럼 보이는 의상을 입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지오토가 그린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스테판(출처=위키피디아)



  

美術史家田中英道 교수는 자신의 저서(빛은 동방에서부터, 1986)에서 13세기에서 14세기 중국에서 수입된 실크제품이나 그림, 도자기 등에 그려진 것들이 당시 이탈리아에서 그대로 모방되었다는 것은 동방, 특히 중국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항구에서 항구로의 이동이 중심이였으나, 21세기 지금은 공항에서 공항으로의 이동으로 바뀌었다. 어느쪽이든 인류는 이동하는 존재다(인간은 호모 모빌리스).

 

 

 

팬데믹적인 흑사병으로 세계화는 종말


 

 

13 ~ 14세기 활발해진 중국과 이탈리아의 관계가, 세계화라는 현상을 배경으로 한 이 밀접한 관계가 오히려 화근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흑사병이였다. 흑사병은 중국에서 발생하고 흑해의 크림반도에 있던 중계무역항 카파 (현재의 페오도시야) 를 따라 이탈리아 남부의 메시나에서 상륙한 것으로 알려졌 있다.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베니스와 제노바가 카파의 주도권을 놓고 영유권 다툼을 벌였지만 당시는 제노바의 지배 하에 있었다. 1347 년에 몽골군이 카파포위 작전을 실행했을 때 몽골군 진안에 전염병이 확산되었기 때문에 철수했지만, 당시에는 이미 현지에 감염이 확산되고 있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역병으로 죽은 몽골군 병사의 시신을 성벽 내에 던져 넣은 것이 세계 최초의 생물병기라 하지만,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14세기 제노바 공화국의 해외전개(출처=위키피디아) 

 


어쨌든 흑사병은 이탈리아에서 상륙해 유럽 서부와 북부로 확대, 지중해 전역으로 감염됐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권에서도 동시에 감염이 폭발하고 있다. 튀니지에서는 역사서설로 유명한 대학자 이븐 할둔의 부모도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모로코에서는 대여행기로 유명한 이븐 바투타가 중국 泉州에서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 이미 몇 달 전에 어머니가 흑사병으로 사망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감염증은 인종, 종교, 남녀불문으로 그야말로 모두에게 엄습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피해가 일어 난 곳은 유럽북부의 잉글랜드였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고 한다. 그 결과, 노동력 부족 사태에 빠져 노동조건 향상을 요구하는 봉기가 빈발하였고, 흑사병만이 원인이 아니지만, 결국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온 유럽이 중세시대 붕괴의 서막이라 상황을 보게 된 것이다. 한편, 흑사병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인구의 8할 이상이 사망하였고 지역사회는 전멸할 정도였다. 흑사병 이후, 유럽의 선진지역이라 할 수 있었던 이탈리아의 전성기는 이미 끝난 것이였다.

 

    

▲유럽의 흑사병 감염증 확대(출처=위키피디아)



 

서구에서 중세가 끝나는 것은 16세기 무렵인데, 당시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었던 '팍스 몽골리아'는 흑사병의 만연과 전세계의 빙하기적인 분위기로 인해 몽골 제국이 붕괴함으로써 14세기에 종말을 고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중국이 화제가 될 수도 없어졌고, 동시에 중국에서도 이탈리아인이 방문도 없어지게 되었다.

    




▲13세기 세계시스템(출처=위키피디아)



  

그 이후에도 지중해는 지중해, 동아시아는 동아시아라는 지역경제권은 지속되었으나, 지역 경제권을 넘는 세계화적 움직임은 15세기 말 포르투갈의 등장까지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슬람 세력을 쫒아내고 이베리아 반도의 주도권을 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이른바 대항해시대를 연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네덜란드, 산업혁명 후는 영국이 패권을 쥐었고, 2차 대전 이후는 미국으로 바뀌였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은 미국에 의한 패권을 더욱 고착화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이 사태를 발판으로 중국이 튀어오를 것인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14세기의 흑사병이 만들어 낸 문학작품

 

 

 

이탈리아에서 감염증이 시작되어, 학교폐쇄로 자택대기를 하기 시작한 3 월초, 밀라노의 고등학교 교장이 학생들에게 보낸 메일의 내용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교장이 거론하고 있는 것은 이탈리아의 국민문학인 '혼약자'라는 대하 소설. 19세기 밀라노 출신의 만조니가 쓴 이 작품은 17 세기에 이탈리아 밀라노를 강타한 페스트를 시대 배경으로 한 로맨틱 이야기다. 이 뉴스 덕분일까 일본에서도 조용하지만 붐이 될 듯하다.

 

 

'혼약자'17세기 밀라노를 무대로 한 이야기라면, 14세기 피렌체에서 태어난 것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전자가 순애보라면 후자는 성인의 선정적 이야기다. 무대설정은 이렇다. 흑사병 감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렌체 교외에 틀어박힌 남자 3명과 여자 7, 모두 10명이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번갈아 열가지씩 이야기한다. ' 10 ' 를 뜻하는 그리스어의'데카'에서 왔다.

 

감염증으로 많은 사망자가 나왔지만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은 것은 아니다. 살아남은 자는 오히려 더 크게 즐길 수 있다. 그것이 '데카메론'의 이야기이다. 이후 유럽에서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동방에서 서방로 유입되고 있던 '無常観念'의 사상이 역전되어,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기왕 살아있는 동안은 즐겨야 한다라는 인생관이 나타난 것이다. memento mori(죽음의 경고)에서 Carpe diem(지금에 충실하자)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팬데믹의 영향이란, 단기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検疫14세기의 팬데믹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검역이라는 것이 14세기의 흑사병 대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엔 라구사 (현재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서 1465년에 시작되었고, 그 이후 베네치아에서 1485년에 제도화되어, 지중해 전역으로 보급되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역사가 윌리엄 맥닐의 질병과 세계사 (中公文庫2007)에 의하면 원래 '격리검역'의 발상이 시작된 것은 1347년으로, 피부병 대책으로 40일간의 격리검역이 실시되어 그것이 격리검역의 시작이라고 한다. 흑사병의 유럽상륙 직전의 일이다.

 

 

그래서 검역을 영어로 'quarantine'라고 하는 것이다. 40 일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온 외래어다. 현재로서는 14일로 단축되어 있지만 기본적인 발상은 같다. 아마도 당시 40일간의 격리 검역 기간 중에 감염증의 절정기는 선박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리라. 그 의미로는, 이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격리기간 14일은 너무 짧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이번 신종 코로나는, 유산으로서 후세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가능하다면 이번 팬데믹에서 살아남아 나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기사출처 

https://jbpress.ismedia.jp/articles/-/59812

 

 

佐藤 けんいち (사토 겐이치) 겐 매니지먼트 대표. 一橋大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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