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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크리스마스의 기적’ 장진호전투 및 흥남철수작전 70주년 기념식 개최

- 미군 군수물자 35만톤 버리고 북한 주민 약 10만 여명 구조
-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은 ‘크리스마스의 기적’
- 12월 11일(금) 오전 11시 인천 '자유공원'내 맥아더장군 동상 앞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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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는 12월 11일(금) 오전 11시부터 인천 '자유공원' 내 맥아더장군 동상 앞에서 ‘크리스마스의 기적’ 장진호전투 및 흥남철수작전 70주년 기념식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950년 10월 19일 한미연합군이 평양을 점령하고 북진하자 중공군은 대한민국의 통일을 막기 위해서 10월 19일부터 압록강을 건너 남하하기 시작했다. 중공군이 대한민국을 공식적으로 침공한 것이다. 

10월 25일 한미연합군은 중공군과 첫 전투를 하였고, 10월 26일 14시 15분 초산지역의 압록강변에 태극기를 꽂았으나, 1차~2차에 걸쳐 30만여 명의 중공군이 파상공세로 한미연합군을 공격하여 한미연합군은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개마고원의 장진호 부근에 고립된다.

중공군의 포위망에 고립된 한미연합군은 중공군과 전투를 하면서 후퇴를 하는데, 실제 전투에서 사망한 병사는 100~200여 명에 불과했으나 약 4,500여 명의 병사들이 얼어 죽는다. 미 해병대와 미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전투기로부터 압도적인 화력을 지원받았던 한미연합군이었지만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에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50도 이상으로 떨어지자 많은 병사들이 동사하게 된 것이다.

미군은 약 4,500여 명이 전사하였고 약 7,000여 명이 동상으로 인한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함께 전투에 참가했던 한국군 카투사 병사 875명도 거의 대부분 미군들과 함께 사망했다. 중공군 또한 이 전투에서 약 5만여 명이 사망하였으며, 이후 한반도에 대한 공세가 둔화되었다.

11월 27일부터 시작된 장진호전투는 12월 11일 흥남부두로 모두 철수하면서 종료된다. 12월 11일부터는 선박에 탑승하여 거제도로 철수하는 ‘흥남철수작전’이 시작된다. 


                        (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1.한국어/2. ENGLISH) )
              

북한 김일성, 중국으로 도망가면서 함흥시에서 북한 주민 12,000명 학살 지시

김일성은 10월 19일 평양이 점령되자 한반도 밖으로 도망가면서 저항하는 북한 주민들을 학살할 것을 지시하였다. 1945년 11월 23일 신의주반공학생의거 이후 평양, 함흥 등 북한 전지역에서 반공산주의, 반소련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북한지역을 쉽게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던 김일성은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함흥시에서는 김일성을 따르는 공산주의자들이 12,000여 명을 납치하여 살해하는 함흥대학살 사건이 발생하였다. 주민들을 총살하거나, 우물에 빠뜨려 죽이고 생매장을 하였으며, 반룡산에서는 동굴에 대규모의 주민들을 가둔 뒤 폭사시키는 방법으로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이 당시 함흥감옥에서 약 700여 명, 충령탑 지하실에서 약 200여 명, 정치보위부가 있었던 지하실 3곳에서 약 300여명, 덕산의 니켈광산에서 약 6,000여 명, 반룡산 방공굴에서 약 8,000여 명을 죽였다.




미군, 군수물자 버리고 북한주민 10만 여명을 태워 거제도로 철수 '크리스마스의 기적'

이런 함흥대학살을 목격한 북한 주민 약 20여만 명이 미군과 함께 거제도로 철수하기 위해 흥남부두로 몰려들었다. 미군은 193척의 선박 중 12척을 징발하여 북한 주민 약 10만 여명을 태우고 12월 23일 거제도로 철수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머지 약 10만 여명은 공산치하에서 사느니 자살하겠다며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 들어 자살하거나, 육로로 걸어서 남하를 하다 중공군과 북한군에 사로잡혀 거의 대부분 학살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당시 흥남항구 인근에는 약 4,000여 개의 소련군 기뢰가 매설되어 있었으며, 흥남철수작전 1주일 전에도 미 해군 함정 한 척이 소련군 기뢰에 피격되어 격침되는 사건이 있었다.

35만 톤의 물자를 버리고 폭파시킨 뒤 흥남항구를 떠나 거제도로 철수하는데 겨울철 동해안의 거센 파도에도 불구하고 한 척의 선박도 침몰하지 않은 채 거제도로 철수한 것은 기적이었다. 또 소련군이 매설한 4,000여 개의 기뢰를 피해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이뿐이 아니었다. 마지막 배였던 화물선 MEREDITH VICTORY호는 7,600톤급의 화물선으로 총 60명의 인원만 승선이 가능하였고 이미 40여 명의 승조원이 탑승하고 있었기에 13자리 밖에는 탑승할 공간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물자를 버리고 14,000명을 탑승시키는 기적이 발생하였다.

비좁은 공간 탓에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지만, 단 한 명도 굶어 죽지 않았음은 물론 항해 중에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 승선할 때 14,000명이 탑승하였으나, 하선할 때는 14.005명이 하선하는 기적이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흥남철수작전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미군은 새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김치1’, ‘김치2’, ‘김치3’, ‘김치4’, ‘김치5’ 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으며, 김치1은 서울에, 김치5는 거제도에 살고 있다. 


                         (영상제작 : 글로벌디펜스뉴스 & 한미역사문화연구원)


'흥남철수작전'으로 남하한 한반도 최고의 엘리트들이 대한민국의 부흥을 이끌다

흥남철수작전을 통해서 남한지역으로 내려온 북한주민들은 남한지역의 경제부흥을 이끌었다. 1945년 11월 23일 ‘신의주반공학생의거’ 당시 소련과 북한 공산주의자들에 항거하던 관서지역과 관북지역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반공산주의 단체가 ‘서북청년단’이었는데, 흥남철수작전을 통해서 내려온 북한지역 청년들도 자연스럽게 이들에 편입되었고 남한내에서 좌익인사들의 테러기도를 사전에 무력으로 봉쇄하는데 앞장섰다. 

이 당시 군과 경찰의 치안력은 매우 약하였는데 ‘서북청년단’의 활동으로 남로당을 비롯한 남한내 공산주의자들을 제압할 수 있게 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의 무서움과 이중성에 대해서 잘 몰랐던 남한 주민들에게 '서북청년단'은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다.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통치하면서 만주를 경영하기 위해 북한지역에 많은 공장과 댐 등을 건설하였다. 흥남철수작전 당시 북한지역에서 활동하던 많은 고급기술자들이 남하를 하면서 일본의 최신 기술들이 남한지역에 퍼지게 되었고 이승만-박정희 정권시절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서 한국전으로 파괴되었던 경제를 복구시키는 초석을 닦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조선말기부터 선교사들이 북한지역에서 많이 활동한 탓에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북한지역에 몰려 있었다. 최초의 한글 성경을 번역한 존 로스 선교사도 신의주를 통해 한반도로 들어왔다. 신의주를 통해서 최초의 한글 성경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탓에 신의주를 비롯한 북한 주민들은 사상적으로 깨어 있었다. 

따라서, 소련 공산주의자들의 억압에 맞서 싸운 '신의주반공학생의거'가 1945년 11월 23일에 발생하였으며, 북한 전역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치열하게 싸우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모두 남하를 하였고, 마지막 남은 북한 주민들이 흥남철수작전 때 미군과 함께 남하를 한 것이었다.

흥남철수작전 이후 많은 기독교인들이 남한지역에 정착하면서 남한지역에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의 교회들은 남한지역의 교회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막대한 양의 구호물자와 선교사들을 파송하였다. 선교사들과 함께 미국의 각종 최신 문물이 들어오게 되었으며, 조선말기에서 일제시대와 한국전을 거치면서 억눌려 있었던 국민들에게 선교사들과 함께 들어온 성경은 큰 위안이 되었다. 사상적으로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이때부터 준비되었던 것이다.

한국교회와 미국교회는 영적으로 묶이게 되었고 미국식 대통령제를 선택한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결정에 힘입어 미국은 한국을 구하기 위해서 670억 달러의 전쟁비용 및 전후복구비용을 지출하였다. 


             (피를 흘려 얻은 자유 - 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공동대표 심하보 목사)

'한미혈맹'은 하나님께서 주신 '크리스마스의 선물'

미국식 대통령제와 기독교를 받아들인 대한민국은 냉전시절 아시아를 수호하는 자유의 방파제가 되었고,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 베트남전에 참전하였다. 하나님께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시키기 위해서 미국과 한국을 한미동맹으로 묶어서 영원히 떨어지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88서울올림픽 이후에 동구권은 소련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1989년 세계평양학생축제를 치뤘던 북한은 1990년대부터 300만 명이 굶어 죽는 끔찍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또 1991년 12월 ‘악의 제국’으로 불리었던 소련은 해체되었다. 

냉전기간 동안 공산주의와 싸우는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의 막강한 경제적 지원에 힘입어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고, 세계 6위의 군사강국이 되었다.

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지난 70년 동안 장진호전투에 대해서 우리 정부와 민간에서 기념식조차 갖지 않는 등 너무 무관심하게 지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반성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풀 한포기, 돌 하나 거저 얻은 것이 없다.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희생으로 이 나라를 지켰으며 대한민국이 번영하는 기틀을 닦았다. 우리가 이제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우리가 그 은혜를 갚을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GDP 3만 달러에서 머물러 있었지만, 우리가 한국전의 역사적 교훈을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그 당시 우리를 도와준 모든 국가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게 되면 GDP 8만 달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전 세계가 중국공산당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중공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대한민국이 중공을 무너뜨리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게 된다면 전 세계가 우리를 지지하게 될 것이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 당시에는 미국이 우리를 지켜줬지만, 이제는 우리가 미국을 지켜줘야 한다. 사람이 은혜를 잊으면 그 순간부터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이재춘 상임대표는 “흥남철수작전과 한국전에서 보여준 모든 미국인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당일 행사에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다. 트럼프 대통령과 주한미군사령관에게는 초청장을 보냈다. 업무가 바빠서 오실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뜻은 모두 전달했다. 하나님의 축복이 모든 미국인들에게 내리길 기도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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