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실탄조준사격에
탱크에 깔려죽은 학생들까지.
그렇게 새벽 4시까지
천안문 광장과 북경 일대는
1만이 넘는 핏빛으로 물듭니다.
마지막까지 시위대들이 부르던
인터내셔널 가는 장송곡이 되었습니다.
그 뒤 30년이 흘렀습니다.
중국의 시계는 1989년 6월4일
그 새벽에 멈춰 서서 꼼짝 않습니다.
아니 거꾸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천안문 광장의 민주화 물결처럼
신자가 1억이 넘었다는 까닭 하나로
법륜공은 사냥감이 되었습니다.
영장도 재판도 없이 갇히고 고문당하다
끝내 생체 장기적출로 살해된
국민들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나마 천안문 학살은
중국식 사회주의니 핑계라도 있었지만
아우슈비츠와 731부대는
다른 나라 다른 겨레를 그리 죽였지만
법륜공은 핑계도 없이
제 나라 국민들을
강택민 통치의 제물로
집단 인신공양으로 바쳤습니다.
그 죄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비록 등소평이 부국강병을 바랬다 한들
자유와 민주를 바라는 국민들을
공산당 통치의 제물로 바쳤으니
모택동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나라와 공산당을 키워봤자
공산당은 부패의 온상이 되었고
티벳과 위구르는 원한에 사무쳤으며
끝내 모택동처럼 황제가 되고 싶은
습근평은 등소평의 유산을
남김없이 허물고 있습니다.
그렇게 등소평의 꿈은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천안문 학살의 원혼은
그렇게 법륜공 인신공양의 피울음은
하늘을 움직여 공산당 통치를
뿌리에서 흔들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나라치고
이제껏 중국의 그 야만에
정부든 민간이든 단 한 번도
항의하지 않고 모른 척한 나라는
오로지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저 먼 나라도 아니고
수천 년 이웃으로 살아온 나라입니다.
이북에서 굶어죽은 3백만만 보았지
모택동 밑에서 죽은 8천만도
천안문 학살과 법륜공 인신공양
피맺힌 원혼들도 모른 척했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마음을 엽니다.
자유와 민주가 꽃피는 중국이 되기를
홍익인간의 나라에서 두 손 모아 빕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