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자유와 민주의 외침 30돌을 기리며.
1989년 4월15일 중국 국민들은언론 출판 집회 결사 민주화의 상징이었던호요방 총서기를 여의었습니다. 추모와 헌화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사람들은 물었습니다.등소평은 왜 자신의 심복이었던호요방을 내쫓았냐고그의 명예회복을 해달라고. 등소평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학생들이 일어섰습니다.권력욕에 불타던 강택민이 때맞춰상해 세계경제도보를 폐간하면서지식인들도 함께 민주화를 외쳤습니다.심지어 북경의 공안들까지 함께 합니다. 천안문을 비롯한 북경이 끝내백만 민주화 물결로 들어찼습니다.광장에는 단식농성자들이 모이고학생들은 비폭력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평양을 다녀온 또 다른 심복조자양 총서기가 광장의 국민들에게5월19일 새벽 눈물로 호소했습니다.“제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상황이 매우 좋지 않으니제발 광장을 떠나주세요.” 그러나 공산당은 광장의 국민들에게떠날 짬을 주지 않았습니다.그 일로 곧장 조자양을 해임하고다음날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그래도 시위대와 군인들은공산당 노래를 서로 부르며큰 마찰 없이 대치합니다.그러나 권력은 소용돌이칩니다. 개도국에서 공산권까지 밀려드는자유와 민주의 물결 앞에서공산당 권력이냐 국민들이냐저울질 하던 등소평은 마침내권력을 지키려 피의 명령을 내립니
- 글로벌인권네트워크
- 2019-06-11 1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