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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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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한국의 핵무장, 한국정부의 선택은(?)

북한 핵 문제, 해법 없으면 한국도 핵무장 할 수 있다

                                                                                   
                                                    이민룡 숙명여대 안보학교수

국제사회는 한반도에 두 얼굴의 코리아가 있다고 인식한다. 세계 최악의 독재정권이 국민을 볼모로 잡고 핵무기 쇼를 연출하는 어글리 북한, 기적과 같은 경제발전과 문화 창조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어메이징 한국, 두 코리아다. 어글리 코리아 북한은 핵 위력을 제외한 다른 모든 분야에서 불량상태이므로 이미 실패한 국가나 다름없다. 

이와 정 반대로 한국이 이룩한 성공 신화는 놀라움과 경이로움 그 자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는 어메이징 코리아 하나밖에 없다.      

어메이징 코리아 이미지는 경제성장, 민주화, 교육과 문화 등의 키워드로 표출된다. 안보에서도 한국이 기적을 연출하며 주권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한국전쟁 초반에 한국은 최남단까지 밀리며 최후 저지선 낙동강 교두보에서 다시 부활했다. 

불과 하루 이틀이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회생한 것이다. 휴전 후에도 한국은 미국을 동맹으로 끌어들이며 북한의 再侵意志(재침의지)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군사력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한국이 펼친 자주국방 노선은 성공신화로 널리 회자된다. 




지금 북한이 외치는 ‘국방과 경제 병진노선’이 한국이 추진하던 자주국방 프로그램의 핵심이었다. 그 결과 1980년 전후로 총과 포 등 기본 병기를 자체 생산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북한보다 무려 15-20년 뒤쳐진 것이었다. 남북한 군사력경쟁이 균형 수준에 도달할 즈음 북한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시작했고, 한국은 다시 핵무기 공포에 갇히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새로운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을 맞고 있다. 그 과제는 바로 핵 전략 개발로 압축되며, 세계는 한국의 역량을 주시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메이징 코리아의 핵 전략이 과연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한국의 핵 전략 전개 과정은 한마디로 고전 음악의 소나타와 흡사하다. 상황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며 獨奏(독주)하는 형식을 취해 온 것이다. 지금은 요격 미사일 싸드 배치를 결정하면서 克核(극핵)을 선택했지만 그 이전에 한국은 先核(선핵)-> 反核(반핵)-> 非核(비핵)을 순환적으로 선택해왔고, 언제 어디서든 핵무기에 대한 전략적 선택을 변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견지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대외전략 순발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 전략을 언제든 상황에 따라 변환할 수 있는 잠재역량을 뜻하기 때문이다. 싸드는 克核(극핵)을 위해 필요할 뿐 이것이 한국의 고정된 핵 전략은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反核(반핵) 혹은 非核(비핵)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반대의 상황이라면 先核(선핵) 혹은 克核(극핵)의 길로 간다는 것이다. 




한국이 북한보다 먼저 先核(선핵) 입장을 취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 역시 많지 않다. 한국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군사력으로 우세한 북한에 맞서기 위해 핵무기를 포함한 그 어떤 무기라도 확보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에 주한미군이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 것만 봐도 북한에 대한 공포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뒤를 이은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한 적이 있지만 동맹국 미국의 반대에 봉착한 나머지 꿈을 접고 말았다. 이처럼 한국이 핵무기 확보에 집착한 것은 핵보유국 지위를 노린 것이 아니라 북한의 침략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한국의 非核(비핵) 정책은 1991년 12월 북한과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하면서 공식 채택되었다. 이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한국은 일방적이며 선제적인 조치를 내놓으며 북한을 압박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한 합의 약 한달 전 단독으로 비핵화를 선언한 데 이어 12월 18일에는 ‘한반도 핵부재’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북한의 핵개발이 본격 추진되는 와중에 한국이 이처럼 비핵화 정책을 선제적으로 추진한 이유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국정부는 핵주권을 성급하게 내려놓는다는 사회적 비난 여론에도 맞서야 했지만, 미국의 전술 핵무기마저 한반도에서 철수시키며 非核(비핵)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만큼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다급한 현안 문제로 인식했고, 그것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反核노선은 정부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된 적이 아직까지는 없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반핵단체들이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해 왔고, 핵무기의 위험성과 핵발전소의 안전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쟁점으로 부각될수록 언제든 공론화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정부가 反核(반핵) 정책을 공식 채택하기 위해서는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요건은 북한의 핵무기 포기와 에너지 안보여건의 개선이다. 

현재로서는 두 조건이 충족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만 한국정부가 국내외 반핵단체의 압력에 맞서 싸우며 축적한 경험이나 노하우는 미래의 핵 정책 추진 잠재역량으로 활용될 여지가 높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가 가지는 강점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국은 싸드 미사일 배치를 결정하면서 非核(비핵) 노선에서 克核(반핵) 노선을 병행하고자 한다. 핵무기를 자체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핵 위협에서 벗어나는 방어 수단을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싸드는 기존에 이미 확보한 방어수단에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MD와는 별도로 한국형 미사일 방어망 KAMD를 구축해오고 있으며, 싸드는 KAMD 위력을 더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한국이 선택한 克核(극핵) 전략은 싸드 배치 문제를 놓고 양면 게임에서 힘겨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중국의 강한 반발에 직면해있고, 대내적으로도 반대 여론에 맞서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국정부는 북한 핵무기 위협에 대해 결코 물러서기 어려운 선택을 취했다. 克核(극핵) 정책에 도움이 되는 그 어떤 수단과 방안도 先核(선핵) 보다는 온건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양면 게임의 주체인 중국과 한국의 반대세력이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들도 한국이 핵무장으로 나서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 정책은 어느 한 가지 노선에 얽매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경향은 지속될 것이다. 같은 민족인 어글리 북한으로부터 핵무기 위협을 받고 있는 한, 한국은 어떤 노선을 선택하든 북한 핵무기 철폐를 타깃으로 삼을 것이다. 만일 克核(극핵)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지 못하면 선핵이든 반핵이든 상황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한국은 어떤 노선이든 선택할 가능성이 높고, 그러한 준비태세와 역량도 갖추고 있다.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한국의 비핵 소나타에 주변국과 세계가 동참하여 협연하는 교향곡이다. 그런 상황이 되기 이전에 한국은 독자적으로 핵 소나타를 연주할 것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 필 자 약 력 >

이 민 룡 (李珉龍)

정치학 박사
숙명여대 전 안보학연구소장
(사) 한국국방정책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명예이사
민주평통 상임위원 (안보국제분과 간사 역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자문위원 역임 (2012-2013.2)
육군사관학교 교수부장 역임


육군사관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미국 University of Maryland at College Park 정치학 박사



                                                          < 주요저술 >

-Min Yong Lee, &amp;quot;Coercive Diplomacy Really Worked in the Crisis of North Korea&#39;s Third Nuclear Test?&quot; The Journal of Security Studies, Vol.2, No.1 (Sookmyung Institute of Security Studies, February 2014).

-Min Yong Lee, Unveiling North Korea&#39;s Crisis provocations: A Garrison State Hypothesis Revisited, The Journal of Ease Asian Affairs, Vol. 26, No.2 (Fall/Winter 2012).

-Insoo Kim and Min Yong Lee,&quot;Predictors of Kim Jong-il&#39;s On-the-Spot guidance under the Military -First Politics&quot;, North Korea Review, Vol.8, No. 1 (Spring 2012), SSCI 등재학술지

- Insoo Kim and Min Yong Lee, &quot;Has South Korea’s Engagement Policy Reduced North Korea’s Provocations?&quot;, North Korea Review, Vol.7, No.2 (Fall 2011) SSCI 등재학술지

-김정은 통치의 북한과 한반도』 (숙명안보학연구소), 2014

-국제위기와 한반도 위기관리』 (양서각), 2013

-에너지 위기의 정치생태학』 (양서각), 2006

-김정일 체제의 북한군대 해부』 (도서출판 황금알), 2004

-한반도 안보전략론』 (봉명출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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