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이민룡 교수 북한의대중국 교역 의존도가 거의 절망적 수준에 도달했다. 북한의 전체 교역92%가 중국에 의존한다는 것은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중국에 위임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2000년에 불과 4.9억 달러에 그치던 북중 교역액은2015년에 약 57억 달러로 증가하여 거의 12배가늘었다. 북한의 대 수출품목을 보면 절망감은 극에 달한다. 전체수출품목에서 석탄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석탄이 외화를 버는 주요 수입원이라는 뜻인데, 그마저도 국제시장 가격을 훨씬 밑도는 헐값에 팔아 넘긴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북한 자체가 심각한 에너지 결핍상태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석탄을 팔아 넘기고 있으니 매국도 이런 매국이없다.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품목 역시 상식을 한참 벗어난다. 에너지자원과 식량 수입이 대부분을 차지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전자기기, 기계류 등 주로 산업 제품들을 수입한다. 한마디로 북한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출품목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산업역량도 크게 뒤떨어진 전형적인 세계 최빈국가로전락해버렸다. ‘교역의정치학’ 관점에서 보면 교역을 통해서 강
이민룡 숙명여대 안보학교수 국제사회는 한반도에 두 얼굴의 코리아가 있다고 인식한다. 세계 최악의 독재정권이 국민을볼모로 잡고 핵무기 쇼를 연출하는 어글리 북한, 기적과 같은 경제발전과 문화 창조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어메이징 한국, 두 코리아다. 어글리 코리아 북한은 핵 위력을 제외한 다른 모든 분야에서 불량상태이므로 이미 실패한 국가나 다름없다. 이와 정 반대로 한국이 이룩한 성공 신화는 놀라움과 경이로움 그 자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는 어메이징 코리아 하나밖에 없다. 어메이징 코리아 이미지는 경제성장, 민주화, 교육과 문화 등의 키워드로 표출된다. 안보에서도 한국이 기적을 연출하며 주권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한국전쟁 초반에한국은 최남단까지 밀리며 최후 저지선 낙동강 교두보에서 다시 부활했다. 불과 하루 이틀이면지구상에서 사라질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회생한 것이다. 휴전 후에도 한국은 미국을 동맹으로끌어들이며 북한의 再侵意志(재침의지)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군사력 열세를
이민룡 숙명여대 안보학교수 역사를통틀어 한국은 공세적으로 안보를 취득한 적이 없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지만 총력 항쟁으로 살아남았고, 한반도 분단 이후 이러한 방어 기질은 북한보다는 지금의 한국인에게 DNA로 고스란히 잔존한다. 북한이 한민족 고유의 방어 기질에서 이탈한 이유는 정치 이념이나 안보논리로포장된 ‘백두혈통’ 사수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무력도발을 주기적으로 감행하면서 내부의 세습독재를 공고히 다져왔고, 그피해를 한국이 모두 감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도 한국은 한민족 고유의 안보습성을 그대로 표출하며 북한의공세적 도발에 대해 제대로 된 군사보복을 취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예가 2010년북한이 한국을 대상으로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연이어 일으켰을 때였다. 당시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일이 그의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승계를 시작해야 하는 비상상황이 발생하여 무력도발을기획하며 위기타개에 나섰다. 특히 ‘연평도 포격’ 도발에서 북한은 무려 170여발의 해안포를 기습 사격했지만 한국은 80여발의 포 사격으로 보복하는데 그쳤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이민룡 숙명여대 안보학 교수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소견이 더 늘어나고 있다. 필자는 2015년 3월에 이미 이 문제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북한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 진단’이라는 책자로 발간했다. 결론적으로 김정은 정권은 선대 통치자였던 김일성과 김정일의 통치 여건과 비교할 때 최악의 조건에 있다고 진단하였다. 이 책자에서 진단한 항목은 김정은이 '물려받은 유산은 무엇인가?', '김정은의 통치 여건은 어떤 상태인가?', '김정은은 어떤 도전에 직면하고 있나?', 등 3가지다. 이 항목들에서 김정은 정권은 우리가 예상하는 수위를 훨씬 뛰어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한 위기는 결국 김정은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므로 이러한 사태는 동북아시아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런데 이와 똑 같은 소견이 미국의 권위있는 군사 지도자의 입에서 나왔다. 5월 25일자 미군의 대표 기관지 ‘성조지’는 주한미군 사령관을 지냈던 월터 샤프 (Walter L. Sharp)의 소견을 실었다. 그는 북한이 내부 불안요인으로 인해 생각보다 빨리 붕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룡 숙명여대 안보학 교수 김정은 정권의 대외전략 구상이 그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제7차 노동당대회를 기점으로 김정은은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로 천명했으며, 이제부터는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대외적으로 대화공세를 펼치며 유화적 모드로 국면전환을 꾀하고 있다. 핵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삼아 전략적 대상국과 흥정 (bargaining)을 시도하는 것이다. 여기서 전략적 대상국이란 미국을 지칭하며 한국과 중국은 미국과의 흥정을 촉진하기 위한 전술 대상국으로 간주한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이러한 북한의 전략구상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수 있지만 북한은 오래 전부터 미국과의 양자간 빅딜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전략을 목표로 설정했다.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로는 한국과 중국을 배제한 채 북미간 평화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사실, 6자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미간 양자협상을 주축으로 간주했던 사실, 핵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중국이 제공할 수 있는 핵우산에 의존하지 않고 미국의 핵위협에 핵무기로 직접 맞서야 한다는 논리를 강조해 온 사실, 등을 제시할 수 있다. 그
▲ 이민룡 교수 숙명여대 이민룡 안보학 교수 북한에서는 지금 ‘자강력 제일주의’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대관식’을 거행한 김정은이 국가정책 노선을 핵모드에서 경제모드로 전환하려는 속셈을 드러낸 결과로 보인다. 여기서 북한이 말하는 ‘자강력’의 실체를 규명해보기로 한다. 용어의 뜻;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은은 “자강력 제일주의는 자체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하여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고 자기의 앞날을 개척하는 혁명정신”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자강력이란 자력으로 획득한 국가역량을 지칭한다. 유래; 김일성이 제창한 ‘자력갱생’ 원리에 그 뿌리가 있다. 자력갱생은 북한식 경제발전 개념인데, 김일성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에서는 ‘경제에서의 자립’으로 정립되어 있다. 따라서 ‘자강력 제일주의’는 김일성 시대의 자력갱생 개념을 그대로 이어받아 용어만 리메이크한 것이다. 배경; 김일성 통치술의 모방, 백두혈통 권력의 계승 의도가 주된 배경이다. 현실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넘어서려는 사전 포석효과를 염두에 둔 듯하다. 다가올 ‘고난의 행군’에 대한 사전 대비책 의미가 부여된다. 경제발전
김정은이 북한 통치자로 등극한 이후 최대의 기획정치행사였던 노동당대회가 끝났다. 관심을 모았던 그의 ‘최고수위’는 노동당위원장으로 최종 낙점되었다. 김일성, 김정일의 그림자 밑에서 최고의 지위를 찾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 직위는 67년 전 김일성이 맡았던 것이어서, 그동안 ‘선군정치’에 짓눌렸던 노동당을 새로 재건하려는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일 시대의 비상통치 구도를 걷어내고 명실공히 사회주의 국가 시스템으로 복원했다는 의미도 부여된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의 노동당 위원장 선출에 축전을 보냈다고 한다. 바로 이 대목이 이번 노동당 대회 개최를 기획한 김정은 권력실세들이 거둔 최대의 수확이다. 애초에 북한이 노동당대회를 열겠다고 결심한 때부터 중국 지도부의 코드에 맞추려는 의도가 있었다. 장성택 처형과 연이은 핵실험 강행으로 북한은 중국의 견제를 받기 시작했고, 게다가 김정은 중국 방문 시도 역시 좌절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으로서는 핵보유국 지위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서둘렀다. 기술적으로는 북한의 핵보유국 진위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김정은은 최대한 빠른 시간에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
이민룡 숙명여대 안보학 교수 북한정권의 행보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이제는 자신의 유일한 후원국이며 형제국가인 중국마저 대놓고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 식당에서 근무하던 13명의 탈북자가 발생하자 중국을 ‘변절자’로 부르는가 하면 유엔 대북제재 270호가 발효되자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굴종했다’는 말도 했다. 중국의 압박이 본격화되자 ‘중국의 압박책동을 핵폭풍으로 쳐부수자’는 내부 문서도 확인되고 있다. 북한이 아무리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해도 중국에 대해서만큼은 이렇게 비난할 자격과 염치가 없다. 중국이 그 동안 북한에 대해 희생해 온 것을 북한 당국이 제대로 인지한다면 이런 지경으로 가서는 절대 안 된다. 미국이 결정적 시기에 한국을 생사의 기로에서 구한 것처럼 중국 역시 절대 절명의 순간에 북한을 살려낸 구원자였다. 바로 6.25 전쟁에서였다. 중국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지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은 국내 위기상황에서도 형제국가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전사 및 실종 20만 여명을 포함 도합 90만명에 달하는 인적 손실을 감내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중국은 북한을 혈맹으로 간주해왔고 그에
이민룡 숙명여대 안보학교수 유엔 대북제재 2270호가 통과된 직후 북한 당국은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말을 인용하며 5차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 (ICBM) 실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의 정보기관도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시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확인했고, 한민구 국방장관 역시 3월 15일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추가 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특히 한 장관은 북한이 앞으로 시행할 핵실험은 핵탄두 폭발 실험이 될 것이며, 북한이 노리는 목표는 핵탄두의 소형화, 경량화라고 예측했다. 더구나 김정은이 제7차 노동당대회를 개최하겠다고 선언한 5월이 불과 몇 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므로 핵실험 개연성은 더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기습 강행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유엔 안보리에서 추가제재를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제재 강도를 최대한 높였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추가 제재는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한다. 인도주의적 교역까지를 제재 대상으로 포함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인도주의적 개입’ (humanitarian interventio
이민룡 숙명여대 안보학 교수 세계는 지금 북한이 얼마나 오래 지탱할 것인가의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유엔 대북제재 2270호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강도의 압박으로 짜여져 있을 뿐 아니라 북한의 마지막 후원국 중국마저 이번에는 동참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기대와는 달리 역사적으로 경제제재가 실효성을 거둔 예는 그리 많지 않다. 과거의 사례를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경제제재가 성공한 경우는 대략 30% 수준에서 그친다고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성공 사례는 1990년대 초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인종차별 정책을 거둔 경우와 리비아의 가다피 (Gaddafi) 정권이 항복한 정도이다. 경제제재 성공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실효성을 거두는데 필요한 까다로운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제재가 장기화될수록 인도주의적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되고,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들의 의지 또한 약해지거나 이탈하는 사례도 늘어난다. 이렇게 볼 때 유엔제재를 당하는 북한이 일정 기간만 잘 버티면 제재의 실효성은 갈수록 감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경제제재가 성공을 거두려면 3가지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숙명여대 전 안보학연구소장 이민룡 교수 글로벌디펜스뉴스 수석 칼럼리스트 2016년 한·미 연합군의 키 리졸브 훈련은 2015년에 비해 30% 이상 증강된 군사력으로 시행되고 있다. 전력 규모도 늘어났지만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미국의 첨단 군사력이 모두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항공모함, 핵잠수함, 강습상륙함 등 주요 해군 전력 이외에도 B-2 스텔스 폭격기와 F-22 스텔스 전투기 등 첨단 항공 전력이 모두 동원되고 있다. 무기체계로 보면 지금까지 방어작전에 주력하던 패턴에서 공세 작전으로 전환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북한이 4차 핵 실험을 강행하면서 핵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워졌다고 한·미 연합군이 인식하는 증거이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넘어서는 안 될 마지노선을 넘었다고 판단하고, 언제든 군사적으로 북한을 타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이번 훈련에서 보여주고자 한다. 여기서 타격 대상으로는 북한 지도부와 핵전력이 주요 타깃으로 꼽힌다. 우리가
미국은 이라크에서 두 번의 전쟁을 치렀다. 1991년 ‘걸프전쟁’에 이어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였다. 걸프전쟁 무렵 필자는 미국의 전쟁 수행 방식에 주목했다. 그리고 걸프전쟁을 전쟁 수행 패러다임의 전환점으로 진단하였다. 10여 년 후, 이라크 전쟁이 다시 일어났고, 여기서 미국은 과거와는 다른 특이한 군사작전을 전개하면서 완승을 거두었다. 걸프전쟁에서 처음 소개되었던 전쟁 수행 방식은 이라크 전쟁에서 완성도를 높였고, 그래서 전쟁을 외교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혔다. 걸프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비교하면 군사적 승리에 이르기까지의 작전 기간은 43일에서 26일로 단축되었고, 전사자도 수만 명에서 수천 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가장 큰 변화는 정밀 유도무기의 위력에서 드러났다. 걸프전쟁에서 다국적 군은 총 20여만 발의 유도무기를 투하하여 명중률 약 8%에 그쳤으나 이라크 전쟁에 서는 2만여 발 투하에 명중률 75%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미국의 신종 무기였다.장갑차와 벙커를 관통하는 새로운 폭탄이 선을 보였고, 적의 지휘통신체계를 무력화하는 전자기 펄스탄 (E-Bomb)도 처음 등장하였다. 이로써 미국은 전쟁을 신
이민룡 숙명여대 안보학 교수국가 간에 동맹이 결성되는 주된 이유·는 두 나라가 특정 국가를 공동의 적 이라고 간주하고 함께 대응할 것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은 이런 조건에서 벗어난 형태로 동맹을 체결하였다. 공식적으로는 두 나라 사이에 ‘미·일 안전보장조약’ (Treaty of Mutual Cooperation and Securit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Japan)이 체결되면서 동맹관계가 시작되었다. 이 때가 1952년이었고, 1960년에 새로운 조약이 탄생되면서 구 조약은 효력을 잃었다. 두 조약의 전체적인 맥락은 같으나 차이점은 대체로 주일미군의 주둔 요건과 관련 있다. 구 조약은 주로 미국의 일방적 요구가 반영되었다. 그 요점은 일본 영토 내에 미군 주둔을 허용하되 다른 제3국에게는 어떠한 군사시설이나 기지도 미국의 승인 없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일본 내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소요 사태 (large scale internal riots and disturbances) 에서도 일본 정부의 요청이 있다면 미국이 이를 진압하는 활동을 지
이민룡 숙명여대 안보학 교수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매 달리면서 한반도는 세계가 주목하는 안보 실험장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도 엄청난 수준인데,여기에 더하여 전략무기 강국을 꿈꾸고 있으니 북한의 군사위협을 억제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역량과지혜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와 동맹국의 힘을 빌리는 노력도 이미한계에 봉착했다. 유엔을 통한 제재가 수차례 가해졌고, 한미 동맹 차원에서의 강압외교 (coercive diplomacy)도 펼쳐졌지만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도 강행한 상태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하며, 이 위협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미국으로서는 주한미군을 보호하는 것이 일차적 관심사항이며, 한국은 국가와 국민의 생존권을 지켜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군사적 식견으로 보면 북한의 핵미사일은 공격용 ‘창’이 되며, 이 무기의 공격을막으려면 ‘방패’가 필요하다. 이 방패에 해당하는 무기로 개발된 것이 ‘요격 미사일’ 이다. 미사일 탄두가
이 글은 숙명여대 안보학연구소장 이민룡 교수의 논문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위기에서 한국과 미국의 강압회교는 성공했는가?(Coercive Diplomacy Really Worked in the Crisis ofNorth Korea's Third Nuclear Test?)"를 요약 정리하여 게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2013년 2월 북한은 제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국제사회와 한미동맹의 경고에도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핵실험을 저지할 방책은 과연 없었을까?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없었다. 이미 유엔의 대북제재는 겹겹이 발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효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이 이 위기 상황의 전면에 놓인 형국이었다. 전략적으로 한미동맹이 북한을 저지할 방책은 ‘강압외교’가 최선이었다. 북한의 핵실험 시설을 군사적으로 타격하는 방책을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전쟁을 불사할 각오가 있어야 가능하다. 반대로 당근책을 생각할 수 있다.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면서 핵실험을 저지하는 것이다. 이 방책은 이미 교훈을 얻은 상태이다. 경제적 지원을 하면 할수록 북한은 이 혜택을 핵무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