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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러시아의 종교와 의식 세계

[기획특집] 최후로 향하는 사회주의: 소비에트 역사로 전망하는 북한의 몰락 -6회-


2012년 러시아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러시아인들 80%가 자신을 정교회 신자라고 답하고 있다. 8%가 다른 종교를 고백하고 있고, 5%는 무신론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러시아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을 계승했고, 그 소련의 핵심국가였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러시아를 종교를 부정하는 사회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 여론조사는 우리 인식이 사실과 동떨어진 오해라는 것을 보여준다.


카톨릭과 신교를 포함하여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수용하고 있거나 핵심종교로 인정하는 서방 국가들 이상으로 러시아는 기독교 전통이 강한 나라다. 다만, 그들이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과 달리, 그리스에서 발생해서 비잔틴 제국을 통해 988년 이후 러시아에 전파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정교회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낯설고 먼 이방국가로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쨌든 5만 5천 개가 넘던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공산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해인 1917년에만 54천개 이상이 파괴되었다. 남아있던 국보급 성당들도 상당수가 스탈린 시대에 파괴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31년에 폭파된 모스크바 최대 규모의 그리스도 구세주 성당이다.





이 성당은 러시아 정교회의 상징 중 하나로 1812년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한 1차 위대한 조국전쟁을 기념하여 1832년에 짓기 시작해 1860년에 완공되었다. 103미터 높이에 7200명 수용 가능한 유서깊은 성당이었다. 그것이 파괴된 자리에는 거대한 야외수영장이 건설되었다.


스탈린은 과거의 흔적을 모두 없애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재건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이 자리에 세계 최대의 청년공산당궁전을 지으려 했으나, 번번이 붕괴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결국 2차 대전 발발과 스탈린 죽음으로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대신 초대형 수영장이 건설된 것이다.


그런 스탈린도 정치군사외교적 필요에 의해 정교회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카톨릭 국가인 독일의 나치와 전쟁에 맞서기 위해 정교회의 힘을 빌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소련인들은 집안에 성화를 두고 기도해도 묵인되었다고 은밀히 전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종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정교회는 서서히 자연사하리라고 하는 그들의 희망사항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공산주의 이상이 지속적인 매력을 발휘될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소비에트 시절 러시아 정교회는 KGB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 당시에는 정교회에서도 공산당 정치국과 KGB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고위직에 오를 수 없었다. 고르바초프의 정보개방 정책인 글라스노스치로 1991년에 공개된 기밀문서보관소 문서를 통해, 총대주교마저 공산당의 비밀간첩이었음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러시아 정교회의 흑역사인 셈이다.


정교회 수뇌부는 교회를 존속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양보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 진실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과연 교회의 존속을 의해서였는지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서였는지 말이다.


어쨌든 그들의 변명은 나름의 정당성은 얻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국가(國歌)에서 보듯이 '신'과 '신성한 러시아'는 부활했지만, 공산주의와 최후투쟁은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말의 진실은 입증된 셈이라는 것이다. 소련의 종교 파괴의 증거였던 야외 수영장은 1991년 사라졌다. 그리고 그리스도 구세주 성당 복원운동이 일어나, 1996년 재건축이 시작되어 성당은 2000년에 다시 과거의 위용을 드러냈다.


러시아의 정교회와 관련된 의식세계는 러시아 언어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장 흔한 인사말인 고맙다는 표현스파시바(спасибо)구하다(спасать)'라는 어근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어 알파벳에는 그리스 문자에서 파생된 흔적이 적지 않다. 델타Д 파이Ф 대표적 예로, 각각 영문 알파벳 D F 음가가 동일하다.


이것은 러시아 문자가 15세기에 그리스 정교회 수도사인 키릴과 메포디에 의해 창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 알파벳을 키릴 문자라고 한다. 그들은 선교와 포교를 목적으로 러시아에 문자를 만들어 보급했고, 그를 통해 성서와 교리가 보급되었기에 러시아어는 종교적 색채가 강할 밖에 없다. 어찌보면 러시아인들은 언어를 습득하면서 신을 인지하고 산다는 의미이다.


러시아에
그리스 정교가 도입된 일화가 흥미롭다. 일설에 의하면, 블라디미르 대공이 국가의 통일을 위해 다신교보다는 유일신교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새로운 종교를 찾기 위해 사절을 파견한다. 로마 카톨릭은 러시아인들이 나무를 섬긴다고 비웃어서 싫었다. 유대교는 자신들의 신에게 쫓겨나는 것이 싫어서 거부했다.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는 블라디미르 대공의 구미에 맞았으나 술과 고기를 금지하는 것이 치명적 결함이었다. 러시아인들은 술과 고기를 즐기는 민족이었다. 마침내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소피아 성당의 미사를 참여해본 사절들은 장엄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천국에 듯하다' 보고했다는 것이다.


다른 설로는, 476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서프랑크와 동프랑크로 분열된 서유럽보다 강력한 국가였던 동로마 비잔틴 제국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안나 황녀와 결혼하면서 그리스 정교를 수용했다는 정치적 이유설도 유력하게 통용된다. 1453 비잔틴 제국이 무너지면서 모스크바 3로마설이 부각되고, 러시아는 독실한 정교회 기독교 국가로 자리매김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가진 흔한 오해 하나가 정교회가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일종의 이단적 종교라는 편견이다. 카톨릭 중심의 서방 교회와 정교 중심의 동방 교회가 분리된 것은 1054년으로 알려져있다. 카톨릭이라는 명칭 자체가 그리스어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보편적인 ' 의미하는 '카톨리코스 katholikos'에서 유래하고, 정교를 뜻하는 '오소독스orthodox' '올바름과 정통' 의미하는 그리스어라는 사실은 많은 논란과 시사점을 제공한다.


어쨌든 카톨릭과 정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성삼위일체론에 대한 견해차에 있다는 것이다. 카톨릭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완전한 동격이자 일체로 보지만, 정교회에서는 유한성을 가진 인격체가 성부와 온전히 동일한 격일 없다고 본다. 성령은 성부에 의해서만 분출되며, 성자는 성령을 통해 성부에 매개된 존재라는 입장이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카톨릭은 성모의 신성을 중시하지만, 정교회는 성모 역시 성자처럼 육체를 가진 인격체임을 강조한다. 인간의 몸을 통해 태어난 존재는 유한할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신적 요소를 드러냄으로써 신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을 '부정신학'이라 하고, 반대로 신을 직접 규명하려는 방식을 '긍정신학'이라고 한다.


정교는 부정신학의 대표로, 이는 정교회 성가음악에서도 드러난다. 인간이 창조한 악기를 배제하고 신이 직접 창조한 인간의 목소리로만 찬양하도록 하는 정교회 아카펠라 성가음악이 그렇다는 것이다. 오르간과 피아노를 사용하는 카톨릭이나 개신교 음악과의 차이는 이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는 종교 지도자에 대한 시각에도 차이를 드러낸다. 카톨릭 교회는 성직자를 신의 제자로서 무오류성을 인정하지만, 정교회는 성직자도 인간인 이상 한계가 있고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절대성을 가질 없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런 정교의 현실적 시각은 정치세력과의 밀착을 인정했고, 러시아 정교는 역사적으로 권력의 조력자이자 협력자로서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74년간의 소비에트 시절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종교말살정책도 견디고, 러시아 정교회는 부활해서 현재 국가적 지원을 받고 협력하고 있다. 1993년 개정된 현 러시아 헌법과 1997년에 제정된 양심과 종교 연대의 자유에 관한 법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러시아가 서방세계와 다른 가치관과 인간관과 세계관을 추구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우리는 이러한 러시아인들의 종교적 정신적 의식세계, 멘털리티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는 지난 세기 70여년간 가장 비종교적인 사회로 존재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시대를 견디고 정교를 부활시킨 그들이야말로 전통적으로 가장 종교적인 의식세계를 가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율배반적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그들을 바로 알게 하고, 그들과 얽히고 설킨 국제역학관계, 특히 여전히 소련식 사회주의의 유물로 남아있는 북한 체제 문제 해결의 실마리와 단초를 제공하리라 본다


결자해지의 원리대로 러시아는 자신들이 만든 공산사회주의 체제를 스스로 부정하고 파괴했다. 그러나 이식된 아류 공산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은 봉건적 왕조시대의 의식 위에 사이비 종교화된 공산 이데올로기를 탑재한 태생적 기형의 사회다.


그 해법은 소련 해체 방식과는 또 다르리란 걸 미루어 유추할 수 있다. 북한의 붕괴는 내부의 응축된 폭발보다는 외적 압박과 강제력에 의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지금 한·미, 한·중, 한·러, 미·북, 북·중 등 세계 정세는 그런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 맹세희 글로벌디펜스뉴스 편집위원 약력 >


-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언론대학 방송학 박사 수료


주요경력


-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아시아아프리카대학 한국어과 강사

- '러시아의 소리' 한국어 방송부 아나운서

- KBS 라디오 방송작가

- KBS 모스크바 통신원

-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부 모스크바 통신원(필명 정여경으로 활동)

- 뉴스타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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