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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74년만에 막내린 이데올로기 실험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의 현실'

[기획특집] 최후로 향하는 사회주의, 소비에트 역사로 전망하는 북한의 몰락 -2회 -

 

                [맹세희 글로벌디펜스뉴스 편집위원(러시아 전문)] 


영국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러시아는 불가사의의 미스터리에 싸인 수수께끼다.’ 러시아 연구자들 사이에 흔히 회자되는 레토릭이다. 러시아를 유럽의 변방으로 치부하려는 시도에 대해 경계심과 경각심을 주는 경구로 흔히 사용된다


유럽인들은 오래전부터 러시아에 대해 야만성과 함께 '알수 없는 원초적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세계에는 러시아 공포증, 즉 '루소포비아'가 존재한다. 그들은 어떤 일을 저지를 지 알 수 없는 존재라는 두려움이다.


이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답변 또한 이미 19세기에 외교관이자 시인이었던 튜체프를 통해 나온바 있다. 외부의 평가에 비해 다소 낭만적이지만 지금도 널리 인용되는 문구다.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믿을 뿐이다.’ 러시아인들 스스로도 이성적 판단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고백이다.


20세기에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강대국은 미국이라는 신세계였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동시에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즉 사회주의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공룡국가 소련이 20세기에 미친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영향 또한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그들은 세상을 절반으로 나눴고 지배했다. 인간의 이상인 공산사회로 가기 위한 사회주의 혁명.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지켜볼 뿐이었다.


1700만 제곱킬로미터로 지구 1/7-1/6의 영토와 14천만으로 세계 10위권의 인구를 가진 러시아. 이것은 남한의 150배의 영토와 3배의 인구 크기다. 이들은 1917 10월에는 역사상 유례없는 노동자 농민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주의 공산혁명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74년이 지난 1991 12월 세기 말에는 그 체제를 스스로 해체하면서 또다시 역사를 요동치게 했다. 세계인들은 그들의 거대하고도 무모한 실험을 공포심과 호기심과 심지어 동경심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제아무리 미사여구 슬로건과 구호를 내건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라 할 지라도, 인간의 본질과 유한성과 한계를 무시한 체제는 환각과 신기루에 불과했다. 공산사회주의는 결국 인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공상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임이 1세기가 채 지나지 않아 폭로되고 붕괴했다.


그들은 지금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1990년대를 지나면서 21세기형 자본주의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또하나의 실험을 진행 중이다. 그 압축성장과 압축변화는 지금 러시아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파악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여전히 망한 옛 강대국이라는 비관적 비판 시각부터 위대한 러시아 재건을 위해 조용한 행진 중이라는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시각까지.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러시아는 1991년 소연방에서 독립한 신생국가로 소련의 주요 영토와 자산과 부채를 계승했다. 1993년 헌법을 통해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가 되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소련으로부터 독립 당시 공산당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 체제와 자유시장경제를 도입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서 대중적 인기와 지지를 누렸지만,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꼭둑각시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특히 옐친의  소수 측근, '옐친 패밀리'라 불리는 그룹의 국가재산 민영화 독점 등은 신생 러시아를 불구의 3류 국가로 만드는 치명적 역할을 한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옐친이 총애하는 젊은 급진개혁파 총리 이고리 가이다르가 추진한 경제개혁은 충격요법이라는 평판을 얻을 정도로 가혹하고 잔인했다. 1996년 민심이반은 급속했지만, 단지 공산주의로의 회귀는 안된다는 식의 모든 언론 재벌과의 결탁을 통한 공포와 협박 프로파간다로, 재기를 노리는 공산당 후보 겐나지 쥬가노프를 누르고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했다. 언론의 지면과 화면은 다른 선택을 불가능하게 공포 분위기를 강요했다.





이 당시의 러시아 언론은 매체가 가진 최고이자 최악의 속성과 기능과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자본과 테크놀로지와 역설적이게도공산사회주의적 선전선동 수법의 결합은 대중매체가 가진 민낯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90년대 초반 소련 붕괴시 급격한 종이값 폭등으로 도산과 폐간이 속출하던 매체들이 일부 이때 권력과의 결탁으로 회생의 숨통이 트인 것은 아이러니이면서 딜레마였다.


러시아 공화국은 소련 붕괴 후 서구의 인도적 구호품을 지원받았다. 마가진이라 불리는 국영상점들에는 물건들이 들어왔지만, 초강대국 소련 국민으로 살던 그들의 자존심은 날개없는 추락을 경험했다. ‘지구촌의 거지에 다름 아니라는 자조적 냉소가 그들 사회에 그늘을 드리웠다.


텔레비전이나 세탁기, 자동차 등을 사도록 직장을 통해 배급된다는 탈론(무상배급표)은 암시장에서 거래되었다. 품질은 형편없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벌어지는 현상들이었다. 집안의 온갖 잡동사니 물품들은 물물교환을 위해 시장과 지하철 역앞 가판대에 몰려나왔다. 초기 원시적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가로 매매가 이뤄지는 자본주의 실험장으로서의 자유시장, 릐녹(рынок)이 공존했다. 또 외국인과 외환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외국인 상점들이 존재했다. 거기서는 줄을 설 필요가 없었지만 가격은 국영상점과 천양지차였다. 빈부차는 커졌다. 유럽에서 현금 돈다발 들고 다니는 러시아 신흥부자 루스끼들의 일화가 심심찮게 화제가 되는 반면, 모스크바 시내 길거리에 구걸하러 나오는 노인들과 아이들도 폭증했다.


1990년대는 러시아의 '고난의 시대'로 불린다. 소련이 세계에 자랑하던 무상의료와 무상주거 무상교육 등이 모두 무너졌다.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던 소련의 대학들도 국가지원이 끊겨 재정난 타개를 위해 달러를 낼 수 있는 외국인 누구에게나 문을 개방해야 했다


무상 의료는 무성의와 불친절과 의약품 부족으로 유명무실했다. 치아를 치료받기 위해 반나절 줄을 서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더한 것은 물건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야하는 것이었다.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줄 서 있으면 뭔지도 묻기 전에 일단 반사적으로 줄부터 섰다. 사회의 생산성은 최악이었다. 어느새 '긴 줄'은 소련 사회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러시아는 공산주의가 무너진 정신적 진공 공간을 대체할 버팀목이 필요했다. 사회는 급속도로 이반되고 있었다. 소련 정부는 1988년 기독교 1000년 기념행사를 허용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러시아 옐친 정부는 소련 시절 거대한 야외 수영장이 되었던 공간에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을 원형대로 복구했다. 러시아 정교회를 끌어들이기 위한 적극적 전략이었다. 현재 러시아 인구의 80%는 자신을 정교회 신자로 인정하고, 8%가 이슬람 등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5%가 무신론자라는 설문조사결과가 2012년에 나온 바 있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러시아의 존립을 가장 위협한 것은 경제파탄 만이 아니었다. 이 글에서는 다른 많은 이야기들을 다음 회차로 미루고, 민족분쟁과 지역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러시아의 북카프카스 지역에는 체첸, 다게스탄, 잉구세티아, 북오세티아를 비롯해 약 10개의 민족자치 공화국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80%가 이슬람교 수니파다. 여기서 특히 국제사회의 이목을 자주 집중시킨 것이 체첸이다. 그들이 처음 소련으로부터 독립운동을 벌일 때는 러시아도 독립을 외치고 있었기에 갈등이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 연방 독립 후, 여기에 속해있는 체첸이 공군 장군 두다예프를 중심으로 독립을 주장하고 나서게 되자 옐친 대통령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게 된 거다. 이미 러시아는 소련을 계승한 독립국가였고, 러시아의 공고화를 위해 민족자치공화국의 독립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1994-1996년의 1차 체첸전쟁이다. 이는 람잔 카디로프라는 친러 체첸대통령을 세우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1999년에 일어난 2차 체첸 전쟁은 이슬람 지하드가 개입하여 더욱 심각성을 더하게 된다. 독립운동이 아닌 테러전의 양상을 띠게 된 체첸사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원하는 나라는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결정적 전기를 맞게 된다. 2001 911일 미국 뉴욕 국제무역센터 빌딩이 폭격을 당하면서 사태는 급반전된다. 러시아와 미국은 대테러를 목적으로 손을 잡게 된 것이다.


그후로도 체첸반군의 행위로 의심받는 테러들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모스크바 지역에서 아파트가 폭격을 당하고, 모스크바 지하철 테러, 도심 호텔 앞 폭파 사건, 여름 록페스티벌 자살폭탄 테러, 두브로프카 극장 인질 사태, 남러시아 베슬란 학교 학생들 인질 사태 등….긴장과 갈등은 이어졌다특히 베슬란 사건 후 푸틴은 북카프카즈 대테러전을 지방정부에 위임한다는 상당히 효과적인 해결책이었다


2009년 이후 대테러전 종료가 선언되었던 것은 이런데 기인한다. 물론 북카프카스  체첸테러 등에 의한 러시아 인명피해는 여전히 수백 명에 달하고 있다. 체첸은 러시아의 두통거리로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이 역시 미국과 러시아의 파워게임, 패권경쟁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은 타당한 견해로 보인다.


소련의 종말을 가져온 또 한가지 결정적 외적 요인은 미국의 스타워즈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80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소련의 붉은 군대가 예상보다 허약하다는 것을 간파한 미국 레이건 정부는 지능형 재래식 무기와 미사일 방어체계 등 무기경쟁에 불을 붙였고, 이를 따라잡기 위해 고르바초프 등 소련 수뇌부는 전력을 다했지만, 이미 소련은 발전의 동력이 꺼진 엔진이었다. 스타워즈 경쟁은 자폭행위나 다름없었다.


2차 대전을 통해 세계 최강군의 이미지를 굳혀왔던 소련군의 위상 추락과 함께 소비에트 연방은 지는 해의 슬픔을 처절히 겪으며 해체된다. 신생 러시아의 운명은 폐허의 잿더미에서 꽃을 피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셈이다. 결국 패권은 경제력과 군사력의 두축으로 이루지는데, 러시아는 두 수레바퀴가 모두 망가진 몰락한 제국의 후예였던 셈이다. 긍정하든 부정하든 그것은 1990년대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의 냉혹한 현실이었다.’


러시아인들의 영웅이었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백주대낮에 취중 댄스 추태를 부리는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로 퇴색한 지 오래다. 그는 결국 안전하고도 극적인 퇴진을 기획한다. 1999 1231일에서 2000 11일로 넘어가는 순간, 붉은 광장 크레믈린 시계탑에서 새천년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국민들에게 그는 서프라이즈 선물을 한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신년사를 통해, 옐친은 그 유명한 문구 나는 물러나겠다(Я ухожу)' 시작되는 퇴임사를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무명의 대통령 권한대행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전면에 나서며 세계 언론의 총아가 된다. 러시아는 그렇게 세계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새천년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것이 러시아다. 그것을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에타 러시야(Это – Россия)! 그들의 '위대한 러시아 재건' 실현 가능한 꿈일까. 처칠의 말을 떠올리며, 그들 러시아인들에게서 눈을 수가 없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 맹세희 글로벌디펜스뉴스 편집위원 약력 >


-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언론대학 방송학 박사 수료


주요경력


-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아시아아프리카대학 한국어과 강사

- '러시아의 소리' 한국어 방송부 아나운서

- KBS 라디오 방송작가

- KBS 모스크바 통신원

-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부 모스크바 통신원(필명 정여경으로 활동)

- 뉴스타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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