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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대표, ‘장진호 전투영웅’들을 잊지 않겠다

무공수훈자회, 10월 19일(수) 국립현충원에서 ‘장진호 전투영웅 추도식’ 거행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회장 박종길)는 19일(수)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제1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도식’을 개최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무공수훈자회 회원 등 약 5000여 명 이상이 참석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장진호 전투에 실제 참전하였던 전쟁영웅들이 직접 참석하여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였다. 또 미군으로 참전하였던 전쟁영웅들도 참석하여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켜달라는 부름에 응한 미국의 아들, 딸들을 기리며’ 분향과 헌화를 하였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이날 추도식에서 “자유와 평와와 인권을 누리면서 이렇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미군 영웅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가슴이 뜨거워진다.”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전국의 무공수훈자 대원 여러분과 231개 지부에서 그동안 국가 안보를 위해서 보여주셨던 위대한 정신과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시는 그 의지력,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정부지원 하나 없이 여러분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이 위대하고 어마어마한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께 두 번, 세 번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와 인권을 저희 새누리당이 확실하게 지킬 것을 다짐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래는 이정현 대표의 추도사 내용이다. 

이 정부 들어서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 초에 군 지휘관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이 도발하면 10배로 보복하라. 나는 군 지휘관들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군 지휘관들이 조치 후에 보고하라 단호한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을 받들어 대한민국 군은 어떤 도발에도 단호하게 대응할 각오를 갖추고 있기기에 북한은 제대로 된 도발한 한번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북한의 평화공세로 남한 내부에서 있었던 갈등과 혼란도 종식이 되고 있고, 또 그 동안 안보를 무시했던 정치 집단조차 ‘안보 우클릭’이라는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이렇게 뭉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첨단무기보다도 더 강력하게 북한의 도발에 대처할 수 있게 되어 저는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이 정부 들어서 체제를 전복하려던 RO와 같은 체제를 부정하는 그런 세력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를 했고, 불법으로 국기를 문란하게 하던 집단들도 이제 거의 임계점에 달하였고 종북 세력들이 거의 꺾이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세계 각국과 협조하여 대한민국의 자유체제를 수호하고 북한을 고립시키는 체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북한의 고위층조차 흔들리고 탈북을 하고 있기에 북한이 무너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추도사 없이 조화만 보냈다. 
                





                                 
                                           < 왜 장진호 전투인가? >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켜달라는 부름에 응한 미국의 아들, 딸들을 기리며

1950년 10월 19일 국군과 유엔군은 평양을 점령한 후 압록강을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을 계속했다. 유엔군은 중공군의 참전 사실을 알지 못한 채 10월 24일 이른바 ‘추수감사절 공세’를 감행하였다. 그러자 중공군은 다음날인 10월 25일분터 한반도에 진입한 이후 최초의 공세인 제1차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로써 유엔군의 ‘추수감사절 공세’는 예상치 못한 중공군의 개입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이 무렵 중공군의 제1차 공세 이후에도 중공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유엔군은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11월 24일 이른바 ‘크리스마스 공세’를 개시했다. 그러나 유엔군의 공세를 사전에 예측한 중공군은 장진호 및 군우리 일대에 포위망을 갖추고 국군과 유엔군을 기다리고 있다가 11월 25일 제2차 공세를 단행했다.






장진호 전투는 중공군 제2차 공세 시에 미 제8군이 서부전선에서 중공군 제13병단과 격전을 전개하고 있을 무렵, 1950년 11월 27일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의 미 제1해병사단이 북한의 임시수도 강계를 점령하기 위하여 장진호 북방으로 진출하던 중 중공군 제9병단 12개 사단의 공격을 받아 흥남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당시 중공군 제9병단은 미 제1해병사단이 장진호 깊숙이 들어오기만을 눈보라 속에서 엎드려 기다리고 있었다.

장진호 일대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지역으로 평균고도가 1,000m에 달하는 고원지대로 당시에는 영하 40도의 추위였다. 미 제1해병사단은 약 2주에 걸친 철수작전에서만 7,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중에서 3,700여명이 동상환자일 정도로 기상이 작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환경에서 10배가 넘는 적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결국 미군의 압도적인 군수지원과 공중화력 등으로 미 제1해병사단은 건제를 유지하고 중공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채 흥남으로 철수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적인 철수작전은 전쟁의 전반적인 국면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만약 미 제1해병사단이 중공군 제9병단의 포위망을 돌파하지 못했다면 함경도 일대에까지 진출한 국군 수도사단과 국군 제3사단은 물론 미 제10군단 전체가 중공군에게 포위당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반면 중공군 입장에서는 압도적인 병력의 우세에도 미 제1해병사단을 섬멸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막대한 피해를 입어 부대를 재편성하는데 무려 3개월이나 소요되었다.






미국 워싱턴 D.C.의 한국전참전 기념공원에는 장진호 전투에 참여한 미 제1해병사단 장병들의 조형물 옆에 “자유는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과 “잘 알지도 못하고,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켜달라는 부름에 응한 미국의 아들, 딸들을 기리며”라는 기념비가 있다. 미국을 위시한 UN참전국의 용사들이 머나먼 땅 한반도에 와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워 주었다. 만약 이들이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자유와 평화 통제되고 굶주림과 인권유린에 시달리는 북한과 같은 처지에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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