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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전투] 커리지 언더 파이어( 1996 )

미 전차부대의 이라크 국경수비대 선멸작전을 그린 영화 '실감나는 전쟁터'



1991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걸프전을 다룬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는 전쟁영화 팬들에게 있어 반드시 소장하고픈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연출을 담당한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1989년작 영광의 깃발을 통해 화려하게 이름을 날렸고 이 때 같이 호흡을 맞춘 덴젤 워싱턴이 전차대대장 설링 중령 역으로 출연하여 다시금 화려한 연기력을 보여줬는데 이 영화의 내용은 문자 그대로 증언자들의 다양한 의견에 따라 진실이 엇갈릴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훗날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와 같은 작품들의 등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초반 20분 이내를 확실하게 잡아야한다는 공식을 확실하게 증명해보인 것도 본작이 보여주는 특징인데 이는 2년 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두드러지게 재현된 바 있다영화 제작진들은 첫 시퀀스인 알 바스라 전투를 연출하기 위해 미 국방부에 M1A1의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우리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그러했듯 미 국방부는 불편한 진실 폭로전이나 마찬가지인 영화의 내용을 문제 삼아 지원 자체를 거부했고( 미 본토를 침공한 테러리스트들을 섬멸하는 척 노리스 주연의 미 합중국 침공과 같은 미국 만세 영화에 조지아 주 방위군을 투입시킨 것이나 탑 건에서 보여준 지원을 생각해보시면 된다 ) 결국 오스트레일리아 육군에서 퇴역한 영국제 센추리온 Mk.전차 12대를 수송해와 철판으로 외피( 外皮 )를 씌우는 방법으로 최대한 M1A1과 유사해 보이도록 개조해 촬영을 진행했다.


덕분에 커리지 언더 파이어는 보통 퇴역하거나 패전한 국가의 전차가 아닌 현역으로 운용 중인 전차를 개조한 경우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영국 육군에서 퇴역한 치프틴 전차들이 대거 M1A1으로 개조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개조된 12대의 전차를 이용,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오늘날에도 숱하게 명장면 중 하나로 회자되는 알 바스라 전차전을 연출했다그런데 이 알 바스라 전차전의 내용을 보면 전개가 이어질수록 오히려 앞서 벌어진 동경 73도선( 73 Easting ) 전차전에 가까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라크군이 미군의 측후면으로 기습 공격을 시도한다든지( 실제 제3 기계화 보병사단이 이런 식의 기습을 시도했다 ) 아군 전차를 오인사격하는 장면은 영락없는 동경 73도선 전차전의 그것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다.


실제 바스라 전차전에서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제1 기갑사단 함부라비는 진지 방어전에 전념하다 거의 일방적인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따라서 필자는 영화 상에서는 알 바스라지만 실제 사실에 가까운 동경 73도선 전차전에 초점을 맞춰 본 포스트를 작성하기로 했다.



동경 73도선 전차전


199082, 정예 공화국 수비대를 앞세운 이라크 기갑부대와 기계화 사단들이 쿠웨이트를 침공, 점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오랜 이란-이라크 전쟁의 후유증으로 재정적인 부담이 강하게 작용하는데다 오랜 반목을 겪은 바 있는 쿠웨이트와의 갈등이 폭발해버린 이 침공으로 서방 세계는 경악에 빠졌고 특히 미국 정부는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의 철군을 요구함으로써 일련의 해결책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특히 자국이 다음 침공 목표가 될 것을 우려한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가 즉각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자 결국 부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 대통령은 제82 공수사단을 전개시키는 한편 다국적군이라 불리는 주요 국가의 군대를 사우디 아라비아에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이 때 집결한 다국적군의 총사령관은 미국의 노르만 슈바르츠코프 대장으로 이라크 남동부의 병참선을 차단하는 한편 쿠웨이트를 해방시키는 것이 이들의 최종적인 목표였다





이에 대항해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에서의 대대적인 파괴 공작으로 다국적군의 결집을 저지하고 이라크의 석유 생산과 수출을 시도했다그 일환으로 199012, 이라크는 대규모의 쿠웨이트 석유 기간시설을 폭파시키는 작전을 계획, 이 중 아흐마디 하역 단지( Ahmadi loading complex )에 위치한 원천을 폭파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1991116일에는 이라크 포병대가 사우디 아라비아와 카프지에 소재한 석유 저장 탱크를 공격했고 19일에는 아흐마디 하역 단지에 있는 펌프들을 개방해 페르시아만( Persian Gulf )으로 원유를 유출시켰다이 때 하루 평균으로 잡아도 무려 200,000배럴에 달하는 원유가 유출되어 해양 생태 오염은 물론 비산유국으로서는 분노를 느끼게 하기 충분한 범죄를 저지른 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라크의 위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국적군은 1991117일을 기해 1일 평균 2,000여대의 출격을 기록하며 이라크군의 대공 체계들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이륙하는 이라크 공군 전투기들을 격추시키기 시작했다.


이에 견디다 못한 많은 이라크 공군 조종사들이 인접한 이란이나 사우디 아라비아로 투항해버림에 따라 본격적인 지상전이 전개될 즈음에는 사실상 쿠웨이트 일대에서 활약하는 적 전투기가 전무하게 되었다.이라크 공군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 다국적군은 마침내 육상으로의 진격을 개시하기에 이르렀.

 

 




 


당시 다국적군의 작전 계획은 사우디 아라비아-쿠웨이트 국경지대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한 이라크군의 정면 대신 좌측면으로 치고 들어가 포위-섬멸하는 것이 복안이었다이 때 동서로 광범위하게 펼쳐진 전선은 무려 570km에 달했고 이로 인해 다국적군은 전선을 3개 전구로 분할했다.


우선 페르시아만에서 쿠웨으트 서부와 이라크 국경지대의 알 바딘에 이르는 지역을 각기 동부, 중앙, 서부 정전구로 분할한 것인데 다국적군 병력도 이에 맞춰 서부 정전구에 제18 공수군단을 배치시켜 이라크군의 후방 및 퇴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중앙 정면전구에는 실질적인 주공( 主攻 )인 제7 군단을 전개시켜 쿠웨이트 북부~알 바스라 일대에 전개한 이라크 최정예 공화국 수비대를 격멸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 때문에 제7 군단에는 미 제1 기갑사단을 주축으로 제3 기갑사단과 제1 기계화 보병사단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강력한 기갑전력이 집결했다.


이 중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의 주인공 격이라 할 수 있는 제2 기갑 기병연대가 군단의 선두로 나섰다.1991224, 대규모 포병 지원 사격과 함께 미군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은 일제히 진격을 개시했다그리고 226, 공세의 주력인 제7 군단은 알 바딘에서 이라크군과 조우했는데 이들은 이라크 정규군 제10, 12, 52 기갑사단 및 정예 공화국 수비대의 제2 기갑사단 메디나”, 3 기계화 보병사단 타워칼나였다.


이 중 전방에 전개한 것은 제3 기계화 보병사단과 제12, 52 기갑사단으로 후방에는 제2 기갑사단과 제10 기갑사단이 배치돼 방어전을 전개했다당시 이라크군의 방어 전략은 다국적군을 최대한 유인한 다음 사막 지형을 활용해 집중 사격을 가해 격멸한다는 것이었지만 당시 유효 사거리가 평균 3km에 달하는 미군의 M1A1이나 영국군의 챌린저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226, 16시를 기해 다국적군은 이라크군 총사령관 알 라와이 중장의 이름을 딴 알 라와이선을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공세 대형은 커리지 언더 파이어에서 묘사된 것처럼 횡대 대형으로 제1 기갑사단, 3 기갑사단, 2 기갑 기병연대가 쾌조의 진격을 수행했다이들의 눈앞에 전개한 것은 이라크 제3 기계화 보병사단의 9 기갑여단, 18/29 기계화 보병여단 및 제12 기갑사단 37 기갑여단이었다.


특히 제3 기계화 보병사단은 공습으로 인한 피해가 꽤 적었고 전차와 보병 전투차의 생존율이 높았기에 진격하는 미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는데 이들은 최선두에서 진격하는 제2 기갑 기병연대와 치열한 전차전을 벌였다.


연대의 선두에서 진격하는 제2 기병대대 E( Eagle ) 중대는 중대장 허버트 레이몬드 맥마스터 대위의 지시에 따라 M1A1 9대를 선두에 세워 진격을 개시, 1618분 동경 73도선을 통과하던 중 1.42km 전방 T-72 8대와 조우해 4분 만에 모두 격파하고 덤으로 BMP-1 수대를 파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초반의 압승을 계기로 동경 73도선으로 진입한 E중대는 기습 공격을 감행한 제3 기계화 보병사단의 차량 10여대를 격파한 뒤 다시금 T-72 18대를 원거리 사격으로 제압했다.


이런 식으로 불과 23분간의 교전에서 E중대는 T-72 28대와 BMP-1/2 보병 전투차 16, 트럭 39대를 격파했는데 이로 인해 제3 기계화 보병사단 18 기계화 보병여단은 전차대대가 전멸함은 물론 800여명의 병력이 전사하고 40여명이 포로로 잡히는 참혹한 손실을 입었다.


필자가 보기에 영화의 초반 장면은 아마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데 곧 설링 중령이 보일러 중위의 쿠거-6를 오인사격하게 되는 이라크군과의 대규모 교전이 벌어졌다초반의 화려한 전과를 거둔 E중대는 1640분을 기해 동경 74도선에서 잠시 진격을 멈추었고 19, 1 기갑사단의 3여단 예하 37 전차대대가 이라크 제3 기계화 보병사단 29 기계화 보병여단을 강타했다.

 




 

 

T-72BMP-1/2 보병 전투차 합계 총 150여대의 기갑차량을 보유한 제29 기계화 보병여단을 상대로 37 전차대대는 M1A1 41대를 투입하여 1km 이상의 거리에서 차례차례 이라크군을 제압해나갔다.


하지만 견고한 방어진지에 엄폐하고 있는데다 이라크군의 정예병들이 배치된 공화국 수비대답게 T-72 전차들은 꽤 격렬하게 저항했고 결국 B중대 23( 우리 군 단대호 구분으로 치면 223)125mm 포탄에 엔진을 피격당해 멈춰섰고 곧 이 전차에 포격이 집중돼 2탄이 배기구, 3탄이 탄약고에 명중됨으로써 B-23호는 전열에서 이탈했지만 다행히 전차병 4명은 긴급 탈출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D중대 24( 424 )1km 거리에서 125mm 철갑탄이 포탑링 부위에 피격돼 격파되는 것을시작으로 총 4대의 M1A1이 격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그러나 전투는 사실상 미군의 일방적인 제압으로 종결돼 전투 종료 후 이라크 제29 기계화 여단은 T-72 76대와 BMP-1/2 84대를 손실하며 궤멸되었다.


한편 제3 기갑사단은 2115, 11 항공여단 예하 AH-64 “아파치” 24대의 지원을 받으며 진격했지만 보다 빠르게 진격한 AH-64 편대가 T-72 8대와 BMP-1/2 19대를 격파함에 따라 전과를 양보해야 했다이 전투로 제29 기계화 보병여단은 M1A1 4대 격파라는 전과만 기록한 채 전멸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 와중에 제3 기갑사단 내에서 M1A1 전차가 브래들리 보병 전투차를 오인사격으로 격파하는 동경 73도선 전차전에서 총 5대의 M1A14대의 브래들리 보병 전투차가 오인사격으로 격파돼 6명이 전사하고 30여명이 부상당하는 피해가 발생했는데 커리지 언더 파이어의 알 바스라 전차전은 아마 이 동경 73도선 전투를 재현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언급된 알 바스라 전투는 227, 미 제1 기갑사단이 모래 능선에 포진한 제2 기갑사단 메디나T-72 61대와 BMP-1/2 34대를 45분 만에 격파해버리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후 전개된 소탕전에서 이라크군 전차 186대와 보병 전투차/장갑차 127, 야포 38, 트럭 118대가 격파됨으로써 걸프전은 22808시를 기해 정전이 되었고 이라크군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으며 쿠웨이트를 내주는 신세가 되었다.


글쓴이 : 유진우 (닉네임 : 만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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