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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대한독립을 빛낸 헐버트와 초기 기독선교사

미국이 한국을 못 버리는 이유는 4,300여명의 미국인 선교사들 때문이다
판매문의 : 윈윈미디어(글로벌디펜스뉴스 02-711-9642)



한반도에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카톨릭 포함) 언제 전래되었는가? 어찌 보면 매우 간단한 질문이지만 시원하게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이 않을 것이다.  정답은 삼국시대 말 신라의 여러 승려들이 당나라로 (AD 635-935) 유학을 갔다가 당나라의 경교(Nestorian)인 동방정교회으 교리나 신부들을 접하고 경교와 관계된 유물들과 서적을 가지고 온 것이 최초이다.


신라시대 선덕여황 왕릉과 불국사를 포함한 일부 사찰에서 돌십자가 발견되고 석굴암의 12제자 그림(석가는 12 제자가 없었음)이나 신라시대의 마리아상 등이 출토되는 것을 본다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종교가 신라시대에 유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서출판 현대사포럼에서 한반도의 기독교 문명의 유입과 그 영향에 대해서 자세하게 밝힌 '대한독립을 빛낸 헐버트와 초기 기독선교사(저자 유성실 선교목사, 한서대 선교신학 박사)'가 출간되었다. 판매는 윈윈미디어(글로벌디펜스뉴스 홈페이지, 02-711-9642) 홈페이지에서 판매한다. 


이 책은 'H.B헐버트 선교사의 통전적 선교가 한국 근대교육과 사회문화 박전에 끼친 영향' 이란 유성실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을 일반 서적으로 출간한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은 제목만을 보고 종교서적으로 생각할 수가 있으나, 이 책의 내용들을 자세히 보면 기독교가 한반도에 전해지면서 당시 사회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에 대해서 역사적인 사실들을 분석한 역사책이다. 



임진왜란은 로마카톨릭 예수회 때문에 발생한 전쟁


이 책에는 로마카톨릭 소속 예수회 신부였던 스페인 출신 사비에르(1506-1552) 신부가 일본으로 포교하러 가는 모습과 일본에서의 활동상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단순하게 임진왜란은 일본군이 쳐들어 온 것으로만 배웠으나, 이 책에는 일본에서 천주교가 엄청난 세력 확장을 이루었고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이 천주교의 확산을 막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출병을 명령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천주교에 관용적이었던 오다 노부나가는 천주교의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1582년 오다노부나가가 사망하고 나자 천주교의 세력 확장과 엄청난 신무기의 화력에 놀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 7년 만에 예수회 금교령을 내리고 탄압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막강한 재력과 신무기 그리고 급속히 불어나는 교세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천주교 세력의 제거를 위해서 18,700명의 고니시 유키나가 (천주교인)부대를 앞세우고 다른 10개 부대를 조선으로 보내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약 5만 명의 조선인들이 끌려갔으며 약 7천명이 귀국을 하고 나머지는 일본 현지에 남아서 천주교로 귀화하거나, 포르투칼 상인에 의해서 한화 약 300원에 노예로 팔려져 마카오, 마닐라, 인도차이나 지역으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이



그리스도교와 유교는 서로 조화가 가능한 종교


이 책에는 또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로마카톨릭 예수회 소속 마태오 리치 신부가 1582년 명나라에 도착해서 서양의 과학, 수학, 천문학 등의 서양 문물을 전해주는 내용도 나온다. 또 마태오리치 신부가 중국의 시경과 서경을 연구하다 여기에 나오는 천제의 천이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천주(하나님)와 동일한 개념이라는 사실도 발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태오 리치 신부를 통해 명나라로 들어간 서양의 학문들이 1609년조선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조선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오 리치 신부가 명나라에 전수해 준 다양한 학문들은 서학으로 불리며 조선에서 주자학과 쌍벽을 이루게 되는데, 공리공론만 일삼는 주자학과 달리 근대 지향적이었던 서학은 실학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당시 박지원, 홍대용, 홍양호, 박제가, 이덕무 등으로 대표되는 실학자들이 조선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실학운동을 널리 보급하였는데 이 실학은 천주교의 교리에서 파생된 학문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어디에 있나? 와 같은 단순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연구를 하다보니 탄생한 천문학, 수학, 철학, 그리고 그런 학문들에서 파생된 다양한 과학기술들이 천주교 사상과 함께 조선에 유입되다 보니 '왕과 신하'의 단순한 사고에 젖어 있었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받았을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가는 바이다.


그러나 1791년 12월 18일 우상숭배를 금지했던 성경에 따라 조상제사를 거부했던 조선의 천주교인들은 '조상제사 거부죄' 처형되는데 이 때부터 조선에서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대원군의 병인박해(1866년)까지 이어지면서 수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조선의 변혁 상들이 숨가쁘게 기록되어 있어 조선중기 이후에 조선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또 이 책에는 16세기~19세기까지 동서양의 문명의 교류가 잘 나타나 있다.



한국에 온 최초의 기독교인 박연과 하멜


또 이 책에는 한국에 온 최초의 기독교인 박연과 하멜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하게 나오는데 이들이 조선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 조선의 사회상에 대해서 이해하기가 쉽다.



제 2에서는 조선말기에 조선에 발을 디딘 귀츨라프 선교사, 토마스 선교사, 윌엄슨 선교사, 로스와 매킨타이어 선교사들의 활약상에 대해서 자세하게 씌여져 있다. 이 선교사들의 활동상을 추적하다 보면 비참했던 조선말기 일반 백성들의 생활상, 그 당시의 국내외 정치상황, 조선에서 일제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 동서양의 문명의 교류, 조선의 패망과 청년 이승만의 외교독립을 위한 대미활동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선교사들의 활동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 중기 이후부터 대한민국의 건국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이야기 들이 쏟아져 나온다. 


따라서 이 책을 단순한 종교서적으로 치부하고 기독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으며 조선 중기 이후부터 대한민국의 건국까지를 그린 역사서라 생각하고 보면 된다.



헐버트 선교사에 의해 교육된 한글과 조선의 문화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상에서 가장 사용하기 편한 한글을 세종대왕이 만들었다고 자랑을 하지만 조선의 노비제도가 세종에 의해 확대되었으며 세종 집권 이후 자국민의 약 50%가 노비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또 세종이 만든 한글을 누가 일반 백성들에게 교육시키고 전파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으며 이에 대한 기록도 찿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그 모든 의문이 한 번에 풀리게 된다. 헐버트 선교사는 1886년 7월 4일 미국에서 입국하자마자 학교를 세우고 조선의 문무 현직 관료들을 선발하여 영어 쓰기, 읽기, 문법 등을 가르쳤으며 산수와 지리수업, 대산법, 각국언어, 세계사, 국제법, 정치경제학, 농리, 지리학,천문 등을 가르쳤다. 미국식 교육을 실시한 것이었다, 이 학교의 명칭은 'Royal College' 혹은 'Royal  English College' 로 불리어졌으며, 7일이 1주일 이란 개념이 없었던 조선에서 역사상 최초로 근대교육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만국지리'라는 세계리지 과목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자 1889년 순 한글판으로 된  한국 최초의 간이 천문 지리서 성격을 갖춘 '사민필지'를 편찬하는데 '사민필지'의 뜻은 '선비와 백성이 반드시 알아야할 지식' 이었다.  이 책에는  태양계, 대기의 순환원리, 5대양 6대주, 각 대륙별 나라, 세계 각국에 대한 지리, 자연상태, 정부형태, 풍습,종교, 산업,교육 군사력 등이 총 망라되어 있었다. 이 책에는 서양의 도량형 단위를 조선이 사용하고 있는 단위로 환산하여 리(거리), 척(높이), 석(곡물) 등으로 표기하였다. 또 조선의 기후를 중심으로 다른 나라의 기후와 비교해 설명을 하였다. 


현대적인 한글교과서 '사민필지'는 청,일,러 등 몇 나라만 알고 있었던 조선의  일반 지식층과 상류층에게 필독서이자 상식서로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한 주시경(훗날 한글학자), 1985년에 입학한 이승만 등의 선각자들도 이 '사민필지'를 교과서로 공부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포부를 펼쳤다. 


대한민국의 교과서에서는 종교편향적인 요소를 삽입하지 않기 위해서 한글보급을 주시경 선생이 앞장섰다고 가르치고 있으나, 그 이전에 미국인 헐버트 선교사에 의해 '사민필지'라는 방대한 지리서가 한글로 제작되어 1889년 교재용, 1891년 초판, 1895년 한자판, 1906년 2판, 1909년 3판이 나왔다는 점은 숨기고 있다.  


헐버트 선교사는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한글을 직접 배웠는데, 당시 '그리스도신문'에 한글로 기고한 '한국의 교육'이라는 글에서 심육, 지육, 체육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교육을 통해서 문명국가를 만들 것을 제시하였으며,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부분이 교육 개혁이라 주장했다.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글 보급에 앞장선 헐버트 선교사


헐버트 선교사는 한글의 우수성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1889년 '사민필지'를 한글로 저술하옇고 1892년에는 한국 최초의 월간지인 '한국소식' 창간호인 1월호에 "한글 1 (The Korean Alphabet I)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헐버트는 한글창제 당시의 조선과 인근 국가들과의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문화적 관계, 조선의 처한 상황,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또한 문자를 분석할 때 주의할 점들을 제시하며 문자 창제자가 문자창제 당시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채택했을 문자의 단순화 양태나 방법을 면밀히 관찰하여야 오차가 없다고 한글을 연구하는 자신의 자세를 대변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역사선생님, 기독교인, 역사연구가, 이승만 대통령 연구가 등은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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