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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공장이 미래의 데이터 센터로

1949년 R.R. 도넬리&선스 컴퍼니 인쇄기 #D2

1949년 R.R. 도넬리&선스 컴퍼니 인쇄기 #D2.
출처: 시카고대학교 도서관 특별장서연구센터 기록보관소

과거의 공장은 작업자가 작업지시서를 처리하고 빵을 굽고 성경책을 인쇄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공장들은 데이터센터로 변모하고 있다. 과연 정보 기반의 경제가 도래하면, 도시는 어떻게 변화할까?

오늘날 우리는 데이터 기반 시대에 살고 있다. 소셜미디어, 스마트 도시, 사물인터넷 등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일상의 세부적인 부분에서도 방대한 정보가 생성된다. 그 결과 비즈니스, 정부, 심지어 연애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대변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빅데이터 시대의 새로운 것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디지털 현재는 과거의 산업과 깊은 연관이 있다. 시카고에서는 도시의 산업용 건물들이 데이터산업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변모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때 작업자들이 작업지시서를 처리하고 빵을 굽고 시어스(Sears)의 카탈로그를 인쇄하던 공장 건물들이 이제는 넷플릭스(Netflix)의 동영상을 스트리밍하거나 금융거래를 위한 서버 호스팅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이런 건물들은 미국 경제의 변화를 몸소 겪어온, 일종의 목격자와도 같다. 현장에서 이러한 변화를 관찰한다면 물리적 영역에서 데이터가 존재하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정보 기반 경제의 도래가 도시의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발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라는 새로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산업의 쇠퇴는 사실 새로운 성장에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조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이룬 성장의 혜택을 도시의 모든 시민이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21세기형 공장’

데이터센터는 21세기형 공장으로 묘사되어왔다. 데이터센터에는 디지털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서버가 구축되어 있다. 흔히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저장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바로 이런 데이터센터에 저장되는 것이다.

‘클라우드’라는 용어에서 오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느낌과는 달리, 데이터센터는 사실 놀라울 만큼 에너지 집약적이고 자본집약적인 인프라다. 서버는 엄청난 양의 전력을 소모하고, 발열량도 상당하여 서버 가동을 유지하려면 냉각 시스템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설비는 정보를 전달하는 광섬유 케이블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초고속 정보통신망’에서 ‘초고속’을 담당하는 이 케이블은 주로 실제 도로나 철도망이 형성되어 있는 통행로를 따라 매설되어 있다. 즉, 인터넷 통로가 과거의 교통 발전 결과에 의해 형성된다는 의미다.

정보 기반 경제는 제조 기반 경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인간이 구축한 환경을 필요로 한다. 데이터 산업에서는 전기 공급 능력, 공장 단지, 광섬유 케이블 연결, 고객이나 타 데이터 센터와의 근접성 등을 갖춘 기존 장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입지 전략에서 핵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러한 입지 전략을 실행에 옮길 때, 이전 시대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구축된 인프라를 현재 데이터 분야의 용도에 맞게 개조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시카고의 사우스 루프(South Loop) 지역에는 과거 R.R. 도넬리&선스컴퍼니(R.R. Donnelley & Sons Company)의 인쇄공장으로 활용되던 건물이 있다. 한때 미국 최대 인쇄업체였던 이 회사는 성경책부터 시어스 카탈로그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인쇄물을 담당했다. 현재는 이곳은, 세계 최대 데이터 센터 중 하나이자 일리노이 주에서 두 번째로 전력 소비가 많은 레이크사이드 기술센터(Lakeside Technology Center)가 사용하고 있다.

과거 R.R. 도넬리&선스컴퍼니의 인쇄공장이었던 건물에 이제는 레이크사이드 기술센터가 들어섰다.

과거 R.R. 도넬리&선스컴퍼니의 인쇄공장이었던 건물에 이제는 레이크사이드 기술센터가 들어섰다.
(사진 제공: Digital Realty)

고딕 양식의 이 8층 건물은 대형 데이터센터의 니즈에 적합하다. 무거운 인쇄물을 이층 저층으로 옮기는 데에 사용되던 수직 운반 시설은 이제 광섬유 케이블 설비를 건물 내로 움직이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철도를 따라 매설된 외부의 케이블이 공장 내부로 이어진 것이다) 인쇄기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건축된 튼튼한 바닥은 서버 장비 선반들을 지지하기 위해 쓰인다. 아날로그 시대의 정점을 경험했던 건물이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의 핵심 노드(Node)로 활약하는 것이다.

레이크사이드 기술센터에서 남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워싱턴 파크 사우스 사이드 지역에는 슐츠 베이킹 컴퍼니(Schulze Baking Company) 건물이 있다. 버터넛 빵으로 유명했던 슐츠 베이킹 컴퍼니가 사용하던 이곳은 5층 테라코타 건물인데, 현재 미드웨이 기술센터(Midway Technology Center)라는 데이터 센터로 개조 중이다. 사우스 루프의 인쇄공장처럼 슐츠 베이킹 컴퍼니 건물도 데이터산업에 유용한 특성을 갖추었다. 무거운 하중을 견딜 수 있는 바닥이 튼튼하고, 제빵 오븐의 열을 식히기 위해 설치한 미늘살(Louvered) 창은 서버 냉각에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의 슐츠 베이킹 컴퍼니 내부. 기존 설비의 연결 부분이 보인다.

2016년의 슐츠 베이킹 컴퍼니 내부. 기존 설비의 연결 부분이 보인다.
(사진 제공: Graham Pickren)

슐츠 베이킹 컴퍼니 건물은 건물 자체만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입지 또한 최적화되어 있다. 슐츠 건물 개조 프로젝트의 한 관계자는, 최근 몇십 년 사이 주변 지역이 탈공업화되고 대형 공영주택 사업이 완료되면서 근처 여러 변전소에 잉여 전력이 많아 데이터센터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산업용 건물을 개조하여 재사용하는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과거 시카고 선타임스(Chicago Sun-Times)의 인쇄 시설이던 건물도 지난해 초 약 3만 제곱미터 넓이의 데이터센터로 개조되었다. 한 대형 데이터센터 기업에서는 모토로라(Motorola)의 사무실이자 TV 공장이던 교외의 건물을 매입했다.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때 유통업계의 공룡으로 군림했던 시어스(Sears)는 자사 매장 건물 중 일부를 데이터센터로 개조하는 부동산 담당 부서를 신설하기도 했다. 아마존(Amazon)은 비스킷 공장으로 사용되던 아일랜드의 건물을 데이터센터로 개조하고 있으며, 뉴욕에서는 20세기 근대화의 양대 산맥이라 할 웨스턴 유니온(Western Union)과 항만 공사(Port Authority)의 과거 건물들이 이제는 세계 최대 수준의 데이터센터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사례에서 우리는 도시 개발의 흥망성쇠를 볼 수 있다. 특정 산업이나 특정 지역이 쇠퇴해도 인프라의 일부는 가치를 유치한 채 남아있다. 이는 곧 영리한 투자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미래의 기회가 된다.

슐츠 베이킹 컴퍼니 광고

슐츠 베이킹 컴퍼니 광고. (이미지 제공: 일리노이대학교 시카고캠퍼스 디지털 장서보관소)

 

데이터센터와 공공정책

데이터로 가득한 일상이 물리적·사회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트렌드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더욱 폭넓은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로 노동과 고용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데이터센터는 세수가 발생하지만 고용 직원수가 적다. 따라서 워싱턴 파크 같은 지역으로 데이터센터가 이동한다 해도 지역 경제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다. 데이터센터가 ‘21세기형 공장’이라면, 근로자층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데이터센터는 기계학습(머신러닝) 같은 혁신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이런 혁신은 고숙련, 저숙련 작업자 대다수의 반복업무를 자동화하면서 위협으로 작용한다. 일례로 미국의 일자리 중 약 47%는 자동화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러나 대신, 반복적이지 않은 업무로 자동화하기 어려운 고숙련 및 저숙련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다. 일부 직업에서는 데이터센터의 도움으로 작업자가 반복 업무에서 해방되어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반면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에게 중산층으로 올라설 기회를 주었던 제조 부문의 일자리는 감소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이런 경제 변화를 상징한다. 데이터 관리의 업무 위탁과 자동화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변화가 근로 계층에게 시사하는 의미에 관한 질문은, 자동화와 소득양극화의 관계에 대한 중대한 문제를 의미한다. 이론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말을 빌면 결국 데이터센터는 창조자이자 파괴자다.

둘째, 데이터센터로 인해 지방 정부의 공공정책에 딜레마가 발생한다. 세계의 공무원들은 열성적으로 데이터 센터 개발을 활성화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신설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관대한 세금 정책으로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AP(Associated Press)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주 정부들이 지난 10년간 전국적으로 수백 개의 데이터센터 설립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확대한 세금 정책의 규모는 약 15억 달러에 달한다. 예컨대 오리건 주는 데이터센터를 대상으로 관련시설, 장비 및 고용에 관한 재산세를 최대 5년간 경감해주는 법을 제정하였으나 이를 통해 창출된 일자리는 단 1개에 불과했다. 이런 정부 보조금의 비용과 이점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진행된 바 없다.

지리학자인 필자는 철학적으로는, 어느 시공간에서든 자본주의적 개발은 선천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이론을 제시한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나 닐 스미스(Neil Smith) 같은 학자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호황과 불황, 성장과 쇠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여기서 시사하는 바는, 현대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구축하는 환경은 언제나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버터넛 빵의 향은 한 세기 가까운 세월에 걸쳐 워싱턴 파크 지역 일상의 한 부분을 대변했다. 오늘날 데이터산업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며 산업의 니즈를 충족할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구축된 환경은 영구적이지 않으며, 미래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도시의 앞날에 어떠한 미래가 펼쳐지든,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미래는 과거를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기사제공 = GE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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