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현지시간), 우리에게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파괴의 씨앗 GMO', '화폐의 신' 등 지정학 및 국제정치경제 문제에 대해 놀랄만한 뒷얘기들을 폭로하기로 유명한 윌리엄 엥달(Engdahl, F. William)이, 코로나 사태 이후 완벽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각종 음모론을 현실로 끌어 올린 다보스 포럼 총재에 관한 "클라우스 슈바브의 바티칸과 해방신학의 불길한 융합" 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칼럼을 발표했다.
그레이트 리셋이라는 개념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것인지 아주 잘 보여주는 글이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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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인 코로나 봉쇄와 그로 인한 경제적 혼란이 한창이던 2020년,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즈니스 포럼의 창립자로, 대중에 노출을 꺼리던 클라우스 슈바브(Klaus Schwab)가 팬데믹을 동력으로 활용하는 세계 경제 전체의 Great Reset을 요구하며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2020년 7월 자신의 청사진, 즉 글로벌 톱다운 방식으로 중앙의 기획에 의해 움직이는 기술만능사회(technocratic society)를 정리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슈바브는 다보스 웹사이트의 표현대로 세계 전체주의를 위한 계획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구 온난화에 대한 공포와 세계 빈곤층의 곤경을 활용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슈바브의 <디스토피아 계획>에 관한 영감은 1970년대 브라질에서 만났던 한 가톨릭 주교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 주교는 슈바브의 방대한 세계주의 네트워크를 현 교황 프란치스코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과 연결시켜 주었다.
전통적 카톨릭 사제와는 거리가 먼 이 주교는, "빨갱이 주교(Red Bishop)"로 알려졌으며 카스트로의 쿠바 모델뿐만 아니라 마오쩌둥의 정적 숙청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중국인들이 죽거나 망가진, 마오의 <문화대혁명>을 지지했다. 그의 이름은 브라질의 돔 엘더 까마라(Dom Helder Camara) 대주교였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으로 알려진 교회 운동을 확산시킨 초기 인물이다.
엘더 까마라는 정치 스펙트럼의 양 극단을 넘나드는 엄청난 변신을 했다. 1934년 까마라는 친(親)무솔리니 브라질 파시스트 운동,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Brazilian Integralist Action), 브라질 통합주의자 행동(AIB:Acao Integralista Brasileira)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우연히 가입한 게 아니었다.
까마라 신부는 젊은 가톨릭 사제로서 AIB 최고위원회 일원이 되었다. 1936년 까마라는 AIB 창립자인 플리니오 살가도(Plinio Salgado)의 개인 비서이자 AIB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1920년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블랙셔츠나 히틀러의 브라운셔츠와 마찬가지로 브라질 AIB는 1930년대 브라질 거리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적극적, 폭력적으로 공격한 야전 무장단체인 그린셔츠(AIB의 준군사조직)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930년대 초에 까마라가 사제 서품을 받았을 때, 까마라는 사제복 아래 그린셔츠를 입었다고 한다. 이후 한 브라질 작가가 까마라의 전기를 썼을 때, 당시 주교였던 까마라와 성당 측은 그의 개인사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 <친파시스트 운동가>로 그를 묘사하지 못하게 막았다.
전쟁이 끝날 무렵인 1946년, 엘더 까마라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AIB의 친무솔리니와 친히틀러 파시즘에서 탈퇴해, 브라질 카톨릭 행동(Brazilian Catholic Action) 부단장으로서 "진보주의(progressivism)" 친마르크스주의자로 탈바꿈했는데, 이 단체의 청년부서인 JUC는 1959년 카스트로의 쿠바혁명을 공개적으로 열렬히 받아들였다. 1963년, 까마라가 지원하던 JUC의 일파인 대중 행동(the Ação Popular:AP)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규정하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가톨릭 단체인 AP는 소련 혁명에 대한 찬사와 "혁명 이론과 활용에 있어 마르크스주의의 결정적 중요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강령을 채택했다. 돔 엘더는 1964년부터 1985년까지 브라질 북동부 올린다 & 헤시피 교구 대주교가 되었다.
해방신학의 창시자
엘더 까마라는 가톨릭 교회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 사이에서 곧 전세계로 전파되는 한 운동의 핵심 인물이 된다. 그것은 나중에 페루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errez) 신부에 의해 <해방신학>이라고 불렸다. '해방'은 사제들이 주장한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지칭한 것이다. 이 운동은 교회의 역할이 제3세계의 억압받고 착취된 땅에서 [해방]되는 과정에 바쳐지는 <헌신>이라고 주장했다. 이 운동은 가톨릭 교회의 위치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사제들은 니카라과의 소모사(Somoza 대통령) 같은 독재자에 맞서는 폭력을 정당화하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산디니스타(Sandinista: 니카라과의 사회주의 정당. 역자주)와 그 외 마르크스주의 집단에 대거 가담했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는 드러내 놓고 "현재의 불공평한 상황을 폐지하고 다른 사회, 더 자유롭고 더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할 것"을 요구했다. 좋게 말해서, 이는 교회가 필요하다면 폭력을 써서 제3세계의 가장 가난한 사회를 해방시켜 부를 재분배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급진적인 일탈 행위였다. 주로 가톨릭 국가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으며 투쟁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인 게릴라 전투에다, 단순한 마르크스주의 교리를 넘어 사회적 정당성까지 부여하는 데 사제들을 써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구티에레스는 "해방신학은 혁명적 호전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The theology of liberation is rooted in a revolutionary militancy)."고 말했다.
엘더 까마라의 교회를 위한 사회 행동주의 지지자이자 동료인 브라질의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는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신학의 마르크스주의, 역사적 유물론(What we propose is Marxism, historical materialism, in theology)이다."라고 했다.
보프와 다른 사람들은 그 후 대지주에게서 땅을 뺏어서 가난한 소작농에게 나눠주는, 급진적 토지개혁 옹호에서 해방 어젠다의 일환인 급격한 지구 온난화 문제를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운동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짐바브웨, 그리고 스리랑카로 퍼져 나갔다.
본질적으로 엘더 까마라의 해방신학은 그런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서 안티파부터 BLM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해자' 라는 이데올로기와 환경 운동 전체를 사회 구석구석에 확산시키는데 앞장섰다.
해방신학은 혁명적 호전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빨갱이 주교와 슈바브의 조우
반세기 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바브는 최근 공개 성명에서 자신의 삶을 바꾼 두 사람에 대해 언급했다. 한 명은 1960년대 말 하버드에 재학 중일 때 그의 멘토였던 헨리 키신저였다. 놀랍게도 또 다른 한 명은 빨갱이 주교 돔 엘더 까마라였다. 닉슨 대통령이 칠레·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좌파정권을 암살해 피노체트 같은 잔혹한 군부독재로 교체하려는 음모를 꾸밀 때, 엘더 까마라는 국가에 대항하는 빈민들을 동원해서 반대편에서 활약 중이었는데, 당시 국무장관이 바로 키신저였다.
2010년 슈바브의 세계경제포럼은 "세계경제포럼: 역사를 만들어가는 파트너 - 1971~2010 초기 40년"이라는 제목의 겸손한 자축서를 출판했다." 거기서 슈바브는 키신저에 대해, 처음부터 자신의 엘리트 비즈니스 모임의 연사와 게스트를 선정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기술했다.
1974년도 설명에서, 슈바브는 "1974년 유럽 경영 심포지엄(오늘날의 WEF)에는 브라질 올린다 & 헤시피 지구의 로마가톨릭 대주교 돔 엘더 까마라(Dom Helder Cámara)가 등장해 도발적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주장을 펼칠 무대로서 다보스 포럼의 역할을 확실히 했다. 까마라 주교는 각국 정부와 재계 지도자들에게는 불청객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보스에 초대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자연 자원의 불공평한 분배로 고통받는 70% 인류의 대변인"이라고 소개했다.
슈바브의 설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돔 엘더는 개발 도상국들이 언젠가는 주요 경제 선진국들에게 도전하고 대립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다국적 기업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끔찍한 환경에 가둬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만인을 위한 번영을 이루기 위해 더 높은 사회적 책임과, 더 공정한 부의 분배 및 <낭비하는 사회>라는 잘못된 가치관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동영상에서 슈바브는 "아마도 제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예를 들어, 내가 처음 브라질 여행을 갔을때,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신부님으로 알려진 한 사제를 만났던 장면이다. 그의 이름은 돔 엘더 까마라였다."
WEF와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초기인 2013년 브라질을 방문한 프란치스코는 돔 엘더 까마라를 '브라질 교회의 여정'에 잊지못할 흔적을 남긴 사람이라고 명명했다. 같은 해 에반젤리 가우디움(Evangelii gaudium: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은 엘더 까마라 등의 해방신학 용어로 "가난한 자들을 먼저 구원하기로 택하심이 없다면, ...복음 선포는 오해 받거나 침체될 위험이 있다"고 선언했다. "빈민을 위한 우선 선택권"이라는 말이 핵심이다. 고귀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무슨 뜻일까?
주목할만한 것은, 2014년 클라우스 슈바브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사적인 초대가 아닌 다보스 회의 연설자로 초청한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이후 슈바브와 수많은 친서를 교환하며 세계경제포럼(WEF)에 안건 기여자(agenda contributor)로 등재됐다. 2020년 10월 다보스 WEF 공식 웹사이트는 "교황은 지난 일요일 4만3000자 분량의 놀라운 회칙에서 COVID-19의 파괴에 대응하여 세계 경제의 Great Reset을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에 합의했다"고 올렸다.
2015년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의 특별 후견인으로 자처하고 있으며, 엘더 까마라의 "시복식(beatification)" 절차를 시작하기 위해 시성성(Congregation for the Causes of Saints: 카톨릭의 성인(saint) 후보자들에 대해 뛰어난 덕목을 지녔다는 진술들과 시복 단계에서부터 시성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감독하는 기관. 역자주*)에 의한 공식 절차의 개시를 승인했다. 그 후 현 교황은 지구 온난화 <그린 어젠다> 조치, 코로나 백신, 양성 평등 지원, 이민, 부자에게서 가난한 자로 부의 재분배, 그리고 논란 많은 그의 교황직을 지배해온 기타 사회적 조치들을 위해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정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
이쯤해서 궁금한 점은, 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 세계화 포럼의 설립자인 클라우스 슈바브가 해방신학의 창시자와 오늘날 교활하게 그러한 사상들을 부활시키고 있는 최초의 자유주의 교황 프란치스코를 끌어들였는가 하는 것이다.
클라우스 슈바브가 마르크스주의를 포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슈바브는 "세계화의 대부"이다. 프란치스코와 슈바브의 이데올로기적 융합은 특히 전 세계의 젊고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유재산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이끌어내고, 동시에 안정적인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로부터는 세계적 기술주의 파시즘인 Great Reset를 위해 꼭 필요한 대중적 지지를 만들어내는 영리한 방법인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11월, 새로운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가 필요하며, 기독교에서 사적 소유는 명백한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면서 "새로운 사회 정의를 세우고 기독교 전통이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절대적이고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그 이상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있다.
2020년 10월, 교황은 회칙 서한인 프라텔리 투티(Fratelli Tutti)를 발표하여 사유지를 약탈했다. 그는 "사업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므로 언제나 분명하게 타인의 발전과 빈곤 퇴치로 향해야 한다"며 "사유재산권에는 항상 세상의 모든 물건 및 그 사용권이 전세계 최종 목적지로 예속된다는 일차적이고 선행되는 원칙이 수반된다"고 천명했다.
이는 WEF의 슈바브가 2020년 저서 [그레이트 리셋(The Great Reset)]에서 "그 무엇보다도, 팬데믹 이후 시대는 부자에서 빈자로, 자본에서 노동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부의 재분배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쓴 것과 매우 유사하다. 슈바브는 자유시장 신자유주의의 시대는 끝났으며 "지속가능한" 환경 정책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WEF 웹사이트에 슈바브의 단체는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 세상>으로 리셋하려는 그들의 비전을 설명했다. 한 동영상은 2030년 그들의 세계 비전에 대해 "당신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므로 행복할 것"이라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빌릴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것은 심지어 여러분의 옷을 빌리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슈바브는 "생태적 정의(ecological justice)"를 달성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재산권의 급격한 재분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프란시스코가 현 금융 시스템을 대체할 '녹색 금융 어젠다(green financial agenda)' 촉구를 반복한 것이다.
바티칸의 어젠다를 수용하는 다보스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불길하다. 그들의 위대한 재설정은 완전 통제, 첨단 기술 감시, 의무 의약품, 그리고 사회 중산층으로부터 내려오는 막대한 소득 재분배라는 새로운 글로벌주의 의제를 지지하는 인간의 자유 또는 자유의 종말에 관한 것이다. 슈바브는 마케팅의 달인이라는 걸 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그의 디스토피아적 그레이트 리셋과 그 '생태적 정의'가 바로 그 마케팅의 전부이다.
F. William Engdahl은 전략적인 리스크 컨설턴트이자 강사,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위를 받았으며, 온라인 잡지 "New Eastern Outlook"의 석유 및 지정학 관련 베스트셀러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