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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암살 기획한 글로벌리스트, 박원순 자살도 개입?

- 아베 암살, 정확히 2년전 사망한 박원순 시장 기일에
- 성급했던 주류매체 단독범행 보도, 수많은 의혹만 불러
- 배후가 글로벌리스트인 근거, 아베는 민족주의자였다!
- 나토 정상회의 직후 아베 제거 작전 구체화
- 이번 사건은 국제공조로 과학수사 다시 해야
- 수사 통해 배후 특정 못하면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까지

7월 8일, 일본의 최장수 총리였던 아베가 암살당했다. 전 세계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같은 날,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도 각료들이 대거 사퇴하자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인 9일, 국가 부도상태에 빠진 스리랑카의 성난 시위대가 대통령 궁을 습격했을 때, 라자팍사 대통령은 이미 군용시설로 도피한 상태였다. 결국 그는 12일 군용기를 타고 스리랑카를 탈출했다. 21일 이탈리아에서는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사표를 던지고 사퇴해 버렸다. 4월 9일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 당시 모스크바에 다녀온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가 의회 불신임 투표로 실각한 바 있다.   


왜 이 많은 나라의 정상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사라지는 걸까? 혹시 진짜 이 모든 사태를 지휘하는 막강한 배후가 존재하는 걸까? 이에 대해 속시원하게 그렇다고 답하는 놀라운 칼럼 "When the Globalists Crossed the Rubicon: The Assassination of Shinzo Abe(글로벌리스트들이 루비콘 강을 건넜을 때아베 신조의 암살)" 이 미국의 독립매체 Global Resaerch에 게재됐다. 한국명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디쉬) 교수가 바로 이 충격적인 폭로의 주인공이다. 그는 글로벌리스트들의 네트워크가 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의 배후이며, 아베가 신세계질서로부터 일본을 지키기 위해 조용하게 진행했던 반세계주의 노선과 그가 정상국가 일본을 꿈꿀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이르기까지 소름끼치게 예리한 분석을 풀어냈다. 의 폭로를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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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 일본의 古都(고도) 하루 종일 날씨가 후덥지근했다. 일본 정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인 아베 신조가 나라 긴테쓰 기차역 앞에서 자민당 지역후보를 위해 그루터기에 올라서서 지원연설을 하던 도중, 갑자기 굉음이 울리며 뒤이어 수상한 연기가 뿜어나왔다.

 

반응은 놀라웠다. 거기 모인 많은 군중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몸을 피하려 도망치거나 겁에 질려 땅에 엎드리지 않았다어딘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연설중임에도 유난히 멀찍이 서 있던 아베의 경호원들은 그를 엄호하거나 안전한 장소로 피신 시키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몇 초 후 평범한 남색 재킷과 이제는 피로 얼룩진 흰색 셔츠, 그리고 일본인납북자연대를 상징하는 파란색 배지를 착용한 아베는 몸을 잔뜩 구부린 채 땅에 쓰러져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즉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제서야 경호원은 아베 뒤에 있던 용의자 야마가미 테츠야를 체포했다. 그와의 몸싸움은 메뉴얼대로의 현장 체포가 아니라 텔레비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액션씬이었다.

 

야마가미는 언론에 의해 즉각 아베에게 개인적 불만이 있었던 41세의 전 해상자위대 대원임이 밝혀졌다. 그는 순순히 경찰에 모든 것을 자백했다. 현장에서 도주하지 않고 체포되는 순간까지 어리석게도 수제총을 쥐고 있었다.

 

아베 총리가 길바닥에 쓰러지는데 도망치거나, 어디서 총성이 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는 군중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마술처럼 촬영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어서 코미디가 시작됐다. 아베를 태운 리무진이 도로를 종횡무진하는 대신, 주변에 모여 있던 시민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 의사가 없냐고 구조를 요청했다.

 

언론은 즉시 이 사건에 대해 <단독범에 의한 총격>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이면서, 카리스마 넘치던 무당 가와세 카요( カヨ)가 시작한 신흥종교 [세계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 世界平和統一家庭連合)]과 야마가미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왜 그가 통일교 측과 교류한 아베를 비난했는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얘기만 되풀이했다.

 

일본의 세계통일가정연합에는 문선명이 세운 통일교 신도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이클 펜 기자는 경솔하게도 아베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음모가 문선명의 추종자들에게 협력한 결과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려버렸다.

 

주류 언론은 이 환상적인 스토리를 받아들였지만, 일본 경찰과 보안 기관은 대안매체들의 다양한 해석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블로거 타카하시 키타가와의 경우, 7 10, 아베 신조는 야마가미가 서 있던 뒤에서가 아니라 정면에서 총에 맞았으며, 총은 킨테쓰역 앞 광장을 사이에 둔 교차로 양쪽 고층빌딩 중 하나 혹은 양쪽에서 비스듬히 발사됐을 것이라는 자료를 게재했다.

 

타카하시 키타가와의 게시물:




 

사건 당일 밤 외과의사가 2발의 총알이 있었다고 발표하기 전까지, 언론은 근거도 없이 아베 총리가 1발 밖에 맞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키타가와의 탄도 분석은 언론 발표보다 과학적이었다.

 

인파 속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볼품없는 수제총을 든 남자가 아베 전 총리에게 두 발을 맞힐 가능성은 낮다. 총기 전문가인 배우 코조노 히로키는 [수키리 『スッキリ』 (7 12일 방송)]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암살 당시 비디오를 주의 깊게 보면 근처 건물 꼭대기에서 소음기가 달린 소총으로 여러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https://www.globalresearch.ca/when-globalists-crossed-rubicon-assassination-shinzo-abe/5786559

 


세상에 전하는 아베 암살의 메시지

 

일본 최강의 정치인이자 작금의 지정학적 위기에서 비롯된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치인들과 관료들을 대거 결집시킨 아베 신조와 같은 거물이, 제대로 된 보안 지침도 지켜지지 않은 환경에서 사살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일본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감춰졌지만, 이번 사건의 메시지는, 여타 일본 정치인들에게는 너무나 선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가 총살되던 바로 그 순간 권좌에서 쫓겨난 영국의 보리스 존슨이나 7 11, 몇 달간 이어진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도 흔들지 못하다가 우버에 대한 영향력 행사 스캔들 하나로 갑자기 기소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전해진 메시지 역시 분명했다.

 

아베 총리의 흰색 셔츠에는 온통 G7국가의 지도자라도 글로벌리즘과 코로나19 방역정책 홍보만으로는 일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새겨진 것이다.

 

아베는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지배구조를 갉아먹은 숨은 암덩어리가 해치운 최상위 희생자로 기록됐다. 이 암덩어리는 각국 중앙정부의 정책결정 권한을 민간 소유의 슈퍼컴퓨터 은행들, 사모펀드 그룹들, 이스라엘 영국 미국의 돈만 되면 못할 짓이 없는 정보회사들 및 세계경제포럼 NATO 세계은행 기타 대단한 국제기구들을 주무르는 억만장자들이 고용한 전략가들이 얽혀 있는 네트워크로 옮겨버리는 제도적 질병이다.

 

4차 산업혁명은 효율성을 명목으로 중앙정부가 모든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페이스북, 아마존, 오라클, 구글, SAP 등으로 넘기는 구실이 됐다. JP 모건이 말했듯 "모든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좋은 이유와 진짜 이유."

 

아베의 암살로 이 기술 폭군들과 그 주인들은 국가 권력을 몸에 두른 자라 하더라도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죽여버릴 수 있다는 엄포를 놓으면서 자신들 역시 루비콘 강을 건너 버린 것이다.

 

 

일본의 문제점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서구>에 합류한 G7 회원국으로, 최고의 정보 공유 프로그램인 <파이브 아이즈>와 협력할 자격을 갖춘 선진국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신세계질서를 위한 월가 국제금융가들과 워싱턴 기획자들의 기대와 요구를 계속해서 무시했다.

 

워싱턴에게는 아시아에 대한민국이 버티고 있다. 물론 일본 수준에 못 미치는 동맹국이라고 끊임없이 질타를 받긴 했어도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펜타곤을 장악하느라 바쁜 슈퍼리치들과 세계경제 전체는 일본의 신뢰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계은행, 골드만 삭스, 또는 하버드대 벨퍼 과학 국제 문제 센터(벨퍼 센터: Belfer Center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Affairs)의 글로벌리스트 시스템에는 <선진국> 출신의 가장 명석한 엘리트들을 위한 코스가 정해져 있다.

 

호주,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또는 이탈리아 출신의 엘리트들은 매끄러운 영어 화술을 익히며, 미국, 영국 또는 스위스의 싱크탱크나 대학에서 연수를 거쳐, 훌륭한 수입을 보장하는 은행이나 정부기관 또는 연구소에서 출세를 보장받으며, 이코노미스트지가 제공하는 친금융계의 관점을 성경 말씀처럼 상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본은 자체적으로 선진 금융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고, 최고 수준의 선진기술을 구사함으로써 공작기계 분야에서 독일의 독보적 라이벌이며,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정도의 선진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 걸맞는 이런 류의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한다.

 

일본 엘리트들은 대부분 해외 유학을 하지 않으며, 일본에는 해외 학계나 언론에서 나오는 정보에 의존하지 않는 수준높은 지식인 계층이 존재한다.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인들은 자국 전문가들만 인용해서 전부 일본어로 정교한 학술논문을 작성한다. 사실, 식물학이나 세포생물학같은 분야에서 일본은 전체가 일본어로 쓰여진 세계적 수준의 학술지들을 출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은 다국적 기업이 쉽게 침투할 수 없는 넘사벽의 내수경제를 가지고 있다.

 

과거 10년간 막대한 부의 집중으로 인해 생겨난 슈퍼리치들은 세계경제포럼의 Young Global Leaders 프로그램과 슈워츠먼 스칼러(Schwarzman Scholars) 장학 프로그램으로 가장 잘 대표되는 비밀 글로벌 거버넌스를 위한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다. 이들 신입 정책 담당자들은 각국 정부, 산업계, 연구기관에 잠입해 글로벌리즘 어젠다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글로벌 거버넌스의 교활한 행태에 일본도 꽤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어를 잘하거나 하버드에서 공부했다고 해서 일본 사회에서 반드시 빠르게 출세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외교와 경제에는 완고할 정도의 독립성이 있는데, 팬데믹 선전선동 기간동안 다보스포럼 참석자들은 바로 이 점을 우려했던 것이다.

 

아베 정권(및 이후 기시다 정권)은 세계경제포럼과 세계보건기구의 백신 접종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관한 지령에 따랐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일본 정부는 시민들의 생활에 직접 개입하는 일이 적었고, 각 조직에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일에도 그다지 능란한 재주를 부리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백신 미접종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차단하기 위한 QR코드 사용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제한적이었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요구된 디지털화 어젠다의 완전 이행을 거부함으로써 다국적 기술 대기업이 다른 나라에서 행사하는 일본에 대한 지배력을 부정한다. 이러한 일본의 디지털화 지연으로 인해 워싱턴 DC의 윌슨 센터는 마키시마 카렌 디지털청(2021 9월 국제금융의 압력으로 출범) 장관을 불러 왜 일본의 디지털화가 이렇게 늦어지고 있는지 설명하게 했다(7 13).

 

일본은 정부나 대학 기능을 다국적 기술 대기업에 넘겨주는 전면적 아웃소싱에 대한 저항이 뿌리깊다. 그러나 최근 그들의 디지털화에 대한 저항이 점차 줄어들고 정보의 사유화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정부 기관이 여전히 고전적인 문서 기록 사용을 포함한 오래된 관습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일본인은 지금도 종이책을 읽으며 한국인이나 중국인만큼 AI에 열중하지 않는다.

 

일본의 서양 문명에 대한 저항은 1867년 메이지 유신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일본은 서양 사상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일본의 개념과 결합하면서 복잡한 국내 담론을 만들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서양 베끼기가 아닌 융합적 통치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즉, 메이지 유신 때 세워진 통치 체계는 일본과 중국의 전근대적 선례를 바탕으로 19세기 프로이센과 영국의 통치 모델을 차용해 만들어진 복합 시스템이었다.

 

그 결과, 장관이 관료 영역에서 군림하는 봉건적 통치관행이 생겨났고, 관료들은 자신들의 예산을 주의 깊게 관리하면서 내부의 지휘명령 계통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아베 전 총리의 문제점

 

아베 신조는 우리 시대의 가장 세련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미국 및 기타 국제기구와의 거래에는 항상 긍정적이었지만 일본을 글로벌리스트의 지배하에 두는 데는 냉정할 정도로 신중했다.

 

아베는 일본을 제국으로 부활시키겠다는 꿈을 안고 있었고 스스로를 메이지 천황의 환생이라 여겼다.

 

아베 전 총리가 영국의 존슨이나 프랑스의 마크롱과 다른 점은 TV에 나오는 것보다 일본 내 실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조절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처럼 아베의 통치를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는 위험천만하게도 정부의 사유화와 교육의 공동화를 밀어부쳤고, 중산층에서 부유층으로 대규모 자산이 이동하는 것을 지지한 부패한 내부자였다.

 

극우단체인 일본회의를 이용해 초국가주의 어젠다를 추진하고, 일제시대의 가장 불쾌한 측면을 미화한 것은 깊이 우려할 만한 일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아무리 어리석은 군사비 증액에도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였고 미국의 온갖 쓸데없는 짓거리에도 기꺼이 동의했다.

 

그러나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손자이자 아베 신타로 외상의 아들인 아베 신조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정치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정치적 도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해 전세계 기업이나 정부 수장을 아시아 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쉽게 불러들일 수 있었다.

 

시니컬한 정치를 펼치는 한편, 일본인이 「솔직함(수나오)」이라고 부르는 순수함과 소박함을 통해 청중을 매료시킨다. 아베의 태도에서 신봉자들의 충성심을 키우고 반대자들을 압도하는 수용성과 개방성을 엿볼 수 있었다.

 

요컨대 아베 전 총리는 자민당내나 국제사회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배려심 있고 자비로운 지도자처럼 보이는 뛰어난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아베의 내셔널리즘을 적대시하는 일본인들이 그래도 그를 지지한 것은 아베가 일본의 국제정치 리더십을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 외교관이나 군인들은 일본의 비전 결여에 대해 끝없이 초조해한다. , 일본은 강대국이 될 수 있는 모든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험 점수만 좋을뿐 리스크는 감수하지 않으려는 겁 많은 동경대 졸업생들에 의해 꾸준히 운영되는 것을 악몽으로 여긴다.

 

그래서 일본은 푸틴이나 시진핑 같은 장기 집권하는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고 마크롱이나 존슨 같은 인물조차 배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베 전 총리는 역사를 다시 쓰는 리더이길 바랐고, 실제로도 국제무대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인맥, 재능, 냉철함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일본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대신을 지냈고, 세 번째 총리대신 취임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 퇴짜를 맞은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세계경제포럼의 배후세력들은, 글로벌 어젠다에 부합한다고 해도 국민국가 내에서 저항을 조직할 능력이 있는 아베 전 총리와 같은 국가지도자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뭐가 잘못되었나?

 

아베 전 총리는 경제적으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한편, 미국 이스라엘 NATO 국가들과의 정치적•안보적 통합이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지난 10년간 일본이 직면한 딜레마를 전통적인 국가운영 수단을 동원해 처리할 수 있었다.

 

일본이 러시아•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이나 그 동맹국과 이렇게까지 가까워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는 이를 거의 완벽하게성사시켰다.

 

아베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능력과 인맥을 총동원해 일본만의 공간을 확보하려 했다그때 아베가 의지한 것은 외무성의 전략가 쇼타로 야치가 지닌 고도의 외교술이었다.

 

아베 총리와 야치 대사는 대조적이지만 효과적인 지정학적 전략을 사용해 동서양을 모두 압박하고 비밀외교를 충분히 활용해 일본을 강대국 게임에 복귀시켰다.

 

다른 한편, 아베 전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이나 호주, 인도보다 한 발 더 워싱턴의 입장을 지지하는 일본을 보여주었다. 당시 아베는 미국의 동아시아 계획에 부합하는 군사재무장을 추진하기 위해 국내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친미성향의 수사를 사용하고 무기체계를 구입해서 워싱턴 정치인들에게 감명을 주는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를 최대치로 끌어들였다. 이 지점에서 아베의 공은 적지 않았다. 워싱턴 정계 내부는 물론 베이징과 모스크바에서도 고도의 로비가 펼쳐졌다.

 

러시아의 경우 아베 총리는 2019년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와 북방영토(쿠릴열도)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복잡한 평화협정 체결에 성공했다. 미국이 일본 정부에 러시아 경제제재를 가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가운데서도 일본 기업의 에너지 개발 계약을 확보하고 러시아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언론인 다나카 사카이는 러시아 정부가 일본 정부내 다른 모든 대표들의 입국을 금지한 뒤에도 아베만큼은 러시아 입국을 금지당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아베는 중국과도 진지하게 관계를 맺으며 장기적인 제도적 유대를 공고히 하고,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행해 드디어 15차 회담(2019 4 912)에서 돌파구를 열었다. 아베는 중국 유력 정치인과 금방이라도 접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베의 언사가 가혹할 정도로 반중국적이었음에도 중국 정치인들에게는 신뢰할 수 있고 예측가능한 인물로 여겨졌다.

 

 

그 모든 것의 결말

 

아베의 암살을 촉발시킨 결정적인 사건은 마드리드 NATO 정상회의(6 28~30)였다.

 

이번 NATO 정상회의는 막후 실력자들이 신세계질서를 위해 법안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유럽을 사수하며 최강의 무력기구가 되기 위해 나토는 동맹을 넘어 세계경제포럼, 세계적인 억만장자들 및 은행가들과 협력해 과거 영국 동인도 회사와 같은 기능을 하는 <세계 군대>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NATO 정상회의에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 정상을 초청한 것은 이 NATO 변혁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들 4개국은 정보공유(다국적 빅테크에 각국 군사분석기능을 아웃소싱), 첨단무기시스템 사용(록히드 마틴 같은 다국적기업 담당자가 관리해야 함), 연합훈련(억압적 의사결정의 선례) 및 기타 국민국가내 지휘계통을 훼손시키는 <협조적> 접근법 등 전례없는 수준의 안보 통합에 동참하도록 초청받았다.

 

7 1일 도쿄로 돌아온 기시다가 처음 만난 사람은 틀림없이 아베였다. 기시다는 바이든 정권이 일본에게 요구해온 무리한 조건들을 아베에게 설명했다.

 

그런데 백악관은 이제 전적으로 빅토리아 눌랜드(정무 차관)와 같은 부시 일족에 의해 훈련받은 글로벌리스트들의 도구로 전락했다.

 

그들이 일본에게 요구한 것은 본질적으로 자살행위였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러시아와의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며, 중국과의 전쟁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일본의 군사, 정보, 외교 기능은 나토 주변에서 잔치를 벌이기 위해 모이는 민간 계약업자들의 신흥 블록으로 이전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베가 죽기 전 일주일 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워싱턴DC 베이징 모스크바 그리고 예루살렘 베를린 런던에 있는 인맥을 총동원해 일본이 바이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나라라는 인상을 세계에 심어주면서 뒤로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데탕트를 조성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러 단계에 걸친 심층적 대응을 생각해내고 고도의 정치드라마를 전개했을 것이다.

 

아베의 이 대응에는 문제가 있었다. 봉쇄로 인해 다른 나라 정부 기능이 정지된 가운데 일본이 이러한 고도의 플레이를 펼침으로써 주요국가 중 유일하게 행정부가 어설프게 기능하고 있는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이다.

 

생각하면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은 바로 2년 전인 2020 7 9일 실종된 박원순 서울시장과 흡사하다박 시장은 서울시청에 중앙정부가 밀어붙인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반발해 손을 썼다. 이튿날 시신으로 발견됐지만 동료 성추행 혐의 때문에 고민하다 자살한 것으로 정해졌다.

 

 

지금 일본이 해야할 일은?

 

현 상황의 위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언론인 다나카 사카이의 지적처럼, 미국이 자신들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가장 바람직한 <희망>을 파괴하고. 글로벌리스트들은 워싱턴이나 다른 기생충 계급에 숨은 막후 실력자들에게 의지하는 저자세의 일본총리대신을 끊임없이 지속시키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본인이 늘어나게 된다면, 그런 전개는 미-일간 완전한 단절을 초래해 정치 또는 군사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워싱턴의 일본담당 수석인 마이클 그린이 그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아베 총리 추도문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린은 부시 행정부의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베테랑이자 CSIS의 헨리 키신저 아시아 프로그램 의장이며 [Line of Advantage: Japan's Grand Strategy in the Era of Abe Shinzo(장점선: 아베 신조 시대 일본의 대전략)]의 저자다. 그린은 아베 전 총리와 아마 가장 친한 미국인이었을 것이다.

 

정작 아베를 위한 추도문은 크리스토퍼 존스턴(전직 CIA요원 출신의 CSIS 일본 석좌)이 원안을 작성했다. 다소 어색했지만 이번 암살사건이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그린은 본능적으로 즉각 반응을 내는 대신 지명도 낮은 프로공작원에게 맡기고 싶었을 것이다.

 

워싱턴이든 도쿄든 어디든 책임있는 지식인과 시민들에게 있어 이 불투명한 암살사건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은 단 하나다.

 

바로 국제적인 과학수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일본 정부가 얼마나 보이지 않는 힘에 사로잡혀 있는지 그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배후를 특정하지 못하게 되면, 비난의 화살은 국가 수반들을 향해 쏟아지고, 글로벌 금융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국가들이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과거 일본의 군장악력 상실은 1932 5 15일 이누요 다케시 총리, 1936 2 26일 사이토 미노루 총리의 암살이 원인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주목해야 할 교훈은 1914 6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사건을 계기로 로스차일드, 와버그 등 국제 금융가들이 세계경제를 통합적으로 조작하여, 긴장상태가 세계1차대전으로 이어지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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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교수는 예일대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동경대 석사과정을 거쳐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언어 및 문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0년간 미국 일리노이대 어버나 샴페인 캠퍼스 등에서 일문학 강의를 했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The Novels of Park Jiwon: Translation of Overlooked Worlds (2011,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하버드 박사의 한국표류기》(2011, 노마드북스), 《세계의 석학들,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 (2012, 다산북스)와 《한국인만 모르는 대한민국》(2013, 21세기북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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