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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빠진 북한군, 정권붕괴 앞당기나

돈이면 안되는 일 없어
노골적으로 뇌물 요구하는 장교들
경제제재에 엎친데 덮친 코로나로 특수군마저 식량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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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 4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는 "어느 탈북자의 이야기는 부패한 북한 군대의 모습을 보여준다(A North Korean Defector’s Tale Shows Rotting Military)" 라는 제목의, 2017년 비무장지대를 통해 탈북에 성공한 한 북한 특수부대원과의 생생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군의 사기만큼은 세계최고 수준이라던 북한군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탈북자 노철민씨의 증언은, 지도자 김정은의 잦은 부재와 더불어 2인자인 김여정의 분별력 잃은 조치 등으로 어수선한 북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썩어 들어가는 북한군 내부 모습이 마치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 하다. 다음은 기사 전문이다.

 

 기사출처: https://www.wsj.com/articles/a-north-korean-defectors-tale-shows-rotting-military-11593867607


North Korean Defector’s Tale Shows Rotting Military

요새화된 국경을 넘어온 노철민은 부패와 굶주림, 그리고 '최고지도자' 김정은에 대한 헌신으로 군 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북한 특수군 중에서도 단연 엘리트들이었다. 3년 전 비무장지대에 배치된 이 특수군 신병 가운데 노철민이 있었다. 그는 46명의 부대원들이 모두 자신처럼 특수군 기준에 부합하는, 키도 크고, 젊고, 연줄이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2017년 늦여름, 그는 모두가 탐내는 그 자리를 명사수의 사격실력과 큰 신장(5피트 8인치)으로 차지했는데, 북한에서는 이례적으로 큰 키다. 하지만 첫 번째 사격연습에 참석했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아무도 사격훈련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었다. 웬만한 북의 동포들은 군사훈련을 피하려 장교들에게 뇌물을 주곤 했었는데 말이다.

 

노철민이 알게 된 - 궁극적으로 그를 한국으로 망명하게 만든 - 것은 동료 특수부대원들과 그를 구별짓는 격차였다. 동료들과 달리, 그에게는 더 나은 대우와 더 빠른 승진, 훈련에서의 유예, 심지어 굶주림을 면할 식량 등을 마련할 돈이 없었다. "나 자신의 미래 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지난 4월 김정은이 3주 가까이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추자, 북한의 미래 자체가 흐릿해 보였고, 그의 건강에 대한 루머가 돌았다. 그가 다시 나타난 후, 김의 여동생이자 복심인 김여정이 서울의 탈북자 단체들이 국경을 넘어 정권을 비방하는 삐라를 보내는 것에 대한 분노의 표시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켜 버렸다. 북한은 군 경계태세에 돌입하고, 2018년 남북간 군사긴장완화 약속 이후 해체시킨 국경 대남선전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김은 갑작스레 대남 군사행동중단을 선언했다. 북한은 다시 확성기를 철거하고 아직까지 남한을 겨냥한 추가 행동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김의 권력 장악력은, 가장 실질적인 수준에서 북한 정권 최고기관인 군부대에 달려 있다. 미국 및 아시아의 군사전문가들은 오랫동안 귀중한 자금이 군대운영 대신 핵무기와 미사일 연구로 빨려 들어가는 전략적 결정에 취해서 북한 군대가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추측해왔다.

 

이제 점점 더 많은 탈북자들이 각자의 박탈감을 부여안고 비슷한 얘기들을 차례로 쏟아내고 있다.

 

몇 년 동안, 주부, 상인, 심지어 외교관까지 약 33,000명의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탈출했다. 대부분 중국을 경유하는 루트를 이용했다. 본지가 확인한 한국 정부의 내부문건에 따르면, 1996년 이후 단 20명만이 경비가 삼엄한 요새화된 DMZ를 가로질러 탈북에 성공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서방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1년에 걸쳐 15시간 넘게 노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의 설명은, 독자적으로는 확인불가라, 정보기관, 탈북자, 연구원 등의 폭넓은 견해에 의해 검증 및 조망되었다.

 

"거긴 무법천지다," 20대 초반의 노씨는 이렇게 말한다. "돈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뭐든 얻을 수 있다."

 

핵 프로그램에 대한 서구의 경제제재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라는 압박에 직면한 현재, 김에게 군사적 활력이 더욱 절실해졌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지난해 말 노동당 대표회의에서, '새로운 전략무기'가 공개될 것이라고 발표하며 인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제재 아래 삶에 대비할 것을 독려했다. 아직 단 한 건의 확진 환자도 보고하지 않은 이 나라의 Covid-19 방역에 있어, 국경을 봉쇄하고 시민들에 예방조치 준수를 강제하는 등의 중요 역할을 담당하는 주체는 바로 군인이다.

 

120만의 현역 군인을 둔 북한은, 세계 최대 상비군 보유국 중 하나다. 북한정권은 미 국무부가 추산한 170개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인 국내총생산(GDP)의 약 4분의 1 (25%)을 군사비로 지출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국방비는 GDP의 약 3%를 차지한다.

 

그러한 국방비 중 겨우 일부만이 최전방 부대로 흘러 들어간다. 노씨로서는 국경을 가로질러 한국군 및 미군과 대치하는 그 유명한 DMZ에서 복무하면 식량도 넉넉하고 장교들의 리더십도 조직적이어서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우발적인 총기사고로 죽어나갔다. 급기야 상급자들이 부하들의 식량을 훔쳐가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다른 동료들의 목숨을 뺏어간 독버섯은 피해가며 야생버섯으로 연명하다 몇 달 만에 그의 체중은 90파운드( 40Kg)까지 빠져버렸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담배뿐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승진하고 싶지 않나?" 한 사령관이 그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액수를 요구하며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노씨는 폭로했다.

 

북한 남성은 거의 예외 없이 최소 10년 이상 군복무를 한다. 이들의 징집목적은 어릴 때부터 국가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을 세뇌시키기 위함도 일정부분 포함된다. 그러나 어떤 입대자들은 정신분열을 일으킬 만큼 이는 고통스런 과정이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6명의 군인이 남북한 국경을 넘어 귀순했다. 한 명은 한국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는 동안 12리터의 수혈이 필요할 만큼의 심각한 총격을 받고도 국경을 가로질러 질주해서 전세계적으로 헤드라인를 장식했다. 그의 뱃속에서는 어마어마하게 긴 기생충이 발견되기도 했다. DMZ를 가로질러 달려오기 전까지 눈 덮인 한반도 동부 산악지역에서 복무하다가 탈북에 성공한 또 다른 병사는 천으로 감싼 초라한 장화를 신고 있었다. 지난해 또 다른 현역 군인도 국경을 넘어 귀순했다.

 

매일 두 번씩 방송되는 뉴스 방송에서는 최고지도자의 건강상태에 대해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북한 안에서 복무 중이었다면, 그 병사들 중 아무도 김의 최근 부재에 대해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노씨는 말한다. 일반대중들은 김이 2014년 발목수술로 7주 가까이 부재였던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지도자가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나타나서야 실마리가 잡혔을 뿐이다. 노씨는 "북한주민들에게 이런 것들은 비밀에 부쳐져 있다"고 전한다.

 

어렸을 때, 노씨는 중국 국경 근처의 외진 산골마을에서 TV, 소파, 전기 배터리를 갖추고 비교적 사치스럽게 자랐다. 그의 조부모는 평양의 고학력 엘리트였는데; 그의 조부는 심지어 현 지도자의 아버지인 김정일과 같은 김일성 종합대학에 다녔다. 그의 부모 모두 한때는 일을 하긴 했지만 경제가 위축되면서 살기가 팍팍해져, 둘 다 실직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의 누나가 그에게 감자를 먹이려 손으로 약초를 캐서 팔았던 기억이 있다.

 

그는 늘 군입대를 꿈꿔왔는데, 김이 2011년 말 '최고 통수권자'의 자리를 맡은 후 더욱 그 감정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한다.

 

비무장지대(DMZ)로 배치되기 전, 노씨는 대체로 그렇듯 그의 출신성분으로 인해 북한의 20만 특수군으로 구성된 여러 부대 중 한 곳에 징집되었다. 성분조사를 거치는 동안, 인민무력부 소속 장교가 자신을 찾아왔던 일을 기억한다. 그 장교는 그에게 "성분이 좋군, 동지."라고 했다.

 

특수군내 첫 주둔지에서, 고된 군사훈련과 부족한 식량 및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통해 노씨는 체력의 한계를 테스트 받았다. 김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매일 생활총화에 의해 강화되었다.

 

'눈부신' 어느날, 노씨는 지도자가 직접 자기네 기지를 방문했던 일을 떠올렸다. 김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호화로운 검은색 밴을 타고 나타났다. 노씨는 멀리서 지도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목이 메였다고 한다. 그는 장군의 존재에 압도되어, 맛없는 저녁 밥그릇에다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감히 지도자를 직접 쳐다볼 엄두도 못 내던 노씨는 머리가 지끈거리기까지 했다.

 

일단 김이 떠나자 노씨는 동료병사들과 함께 서서 미친 듯이 "김정은 장군 만세!"를 외쳤다.

 

공장이나 농장을 시찰하는 김의 텔레비전 속 모습에 조차, 노씨와 그의 동료병사들은 재빨리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아 제복을 단정히 한 채 일제히 박수를 치곤 했다. 시민들은 어린 나이부터 지도자들을, 북한을 건국한 김일성의 직계혈통을 지닌 "백두혈통"으로 불러야 한다고 배운다. "김씨 일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노씨는 말한다. "오로지 김씨 일가에게만 느끼는 존경심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건설된 철로 위로 12시간 동안 힘겹게 이동하여 DMZ 초소에 도착하자마자 노씨는 식당 신설 공사현장에서 벽돌을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장교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내 말대로 해라. 내가 패고 싶으면, 팬다. 죽으라고 하면 너는 죽는 거다"라고 했다.

 

병사들은 밤낮으로 벽돌을 옮기는 데 동원되었다. 노씨는 처음 3일 동안 건설사업에만 투입되었다. 최전방에서 불과 3개월 만에 탈영하여 그는 구내식당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엘리트 출신들이 주둔하고 있는 국경지대에는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장교들은 부대에 제공된 쌀은 인근 시장에다 내다팔고 대신 병사들에게는 싸구려 옥수수 죽을 먹였다. 고위층 부모를 둔 일선 병사들은 뇌물로 쓸 현금을 들고 다녔다.

 

그의 주된 임무는 비무장지대가 내려다보이는 초소에서 경비를 서는 것이었다. 노씨는 자신을 추위도 막아주지 못하는 군복을 입고 13시간 교대근무를 섰다. 기온이 영하 40도 가까이 곤두박질쳤다. 매일 아침 근무를 나서면서부터 피부가 추위에 갈라지고 숨쉴 때마다 눈썹이 얼어붙었다.

 

다른 사람들은 부대 지휘관들에게 한 달에 총 150달러에 달하는 뇌물을 먹여, 추위에 보초서는 것을 피했다. 그 돈으로 여분의 음식을 사들였고, 따뜻한 옷을 입고, 가족들과 매주 전화통화를 했다.

 

돈만 있으면 당장 진급할 수 있고, 병사가 훈련에 빠질 수도 있다. 노씨는 절망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잠을 더 자고 달콤한 빵을 사기 위해 동네시장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가족에게 단 한 통의 전화도 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초소에서 보냈다.

 

북한 최전방 초소 내부에는 대한민국 비행기 포스터가 벽에 걸려 있었다. 각각의 한국 전투기 사진 아래에는 모델명이 붙어 있었다. 익숙해지기 위해, 군복을 입은 한국군 장병들의 사진도 벽에 붙어 있었다. 노씨는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들의 삶은 다를까 궁금했다.

 

탈북하기 전 몇 주 동안 노씨는 며칠이나 잠을 자지 못한 상태로 초소를 섰다. 혼자 초소 안에 앉아있으면 전화기를 통해 모스부호로 메시지가 들어왔다. "졸지 말라"는 사령관의 신호였다.

 

어떤 날은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벌판으로 걸어나갔다: 두 시간 안에 사마귀 알 100개를 가지고 돌아오는. 장교들은 한약으로 쓸 사마귀 알을 시장에다 팔곤 했다. 노씨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비닐봉지를 들고 갈대밭을 터벅터벅 돌아다녔는데, 그렇게 생기는 이익은 장교들이 보곤 했다.

 

노씨 같은 젊은 군인들은 노동당 당원이 되기 위해 공부했다. 당적을 얻는 것은, 집권당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되는 북한에서, 사회적 사다리를 한 계단 올라가는 것이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노씨는 수첩에 군대 규칙이 빼곡하게 적힌 노트로 군법을 외우기 위해 짜투리 시간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새 공책이나 펜을 살 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장교들은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보내라고 노씨를 압박했다. 한번은 집에 2분 정도 전화를 걸도록 돈을 빌려준 적도 있었다. 장교가 옆에 서서 돈을 달라고 쿡쿡 찌르는 바람에 그는 전선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여동생이 1달러에 해당하는 전화통화료를 갚으라고 돈을 보냈다. 몇 푼 남은 돈으로 공책과 손전등을 샀다.

 

국경에서는 동물 썩는 냄새가 났다. 노씨는 멧돼지가 울타리에 감전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어떤 때는, 쌍안경으로, 호기심에 가득 차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 한국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탈출할지 말지 결심을 굳히게 된 며칠 동안, 장교들이 그가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범죄, 즉 쌀 과자를 훔쳤다고 고발했다고 한다. 그의 분대장이 그를 때렸고 그는 자아비판을 견뎌낼 수 밖에 없었다.

 

2017 12월 어느 날 아침, DMZ 초소를 향해 잠시 걷던 그의 머릿속에 감질나는, 하지만 위험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북한 인공기 아래를 지나면서 그는 처음으로 경례를 거부했다. 그리고 나서 노씨는 소총바닥으로 조심스럽게 찔러보면서 금속 울타리를 들어올렸다. 그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도망쳤다.

 

노씨는 90발의 총알과 수류탄 2발을 짊어지고 가슴 높이의 물살을 가르며 도망쳤다. 지뢰를 안 밟도록 빌며 안개를 뚫고 자유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어떤 유혹에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선전구호가 떠올랐다.

 

자신의 반역행위가 엄청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수년간 외쳐서 그의 기억 속에 새겨진 이 구호는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일단 무사히 남측에 도착하자, 병사들은 그에게 "너 탈북자냐?"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노씨는 어리둥절했다. 그 단어를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셜록 홈즈 소설을 읽고 있는데, 이 소설은 강제로 읽어야 했던 김일성 전기 보다 더 재미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음식이 너무 풍족해서 이따금씩 식사를 거르기도 한다. 그는 따뜻한 라떼를 좋아하게 되었다.

 

노씨는 최근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했고 주말마다 웨딩홀 뷔페에서 일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다는 생각에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그는 전염병으로부터 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북한의 가족들을 걱정한다. 그는 자신이 북한 군인으로 어떤 대우를 받았었는지 떠올리며 몸서리를 친다. 노씨는 "그들은 우리를 죽게 내버려둘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일회용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특히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몰라서 자신의 탈북에 죄책감을 갖고 있다. 북한 김씨 정권은 탈북자 가족을 처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씨는 알 수 없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그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줄 뿐이므로.

 

"매일 잊으려고 노력한다"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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