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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평화 구축 주역, 중국 아닌 대한민국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이 아시아 미래 평화 좌우
루즈벨트의 무신경하고 안일한 한반도 처리 결국 한국전쟁 불러


 


지난 2World Tribune 지는 외교국방문제 취재 전문인 J. 메츨러 유엔 특파원의 "한국의 잊혀진 전쟁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며, 미래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열쇠를 쥐고 있다(Korea’s ‘forgotten war’, which never ended, holds key to future Asian peace)."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제는 그 더러운 막후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긴 하지만), 공산진영 대 자유진영이 벌인 동족상잔의 비극적 열전이라고 평가 받던 한국전쟁 70년을 뒤돌아보며 기자는 배경과 향후 전망에 나름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다음은 칼럼 전문이다.

 

기사출처:https://www.worldtribune.com/koreas-forgotten-war-which-never-ended-holds-key-to-future-asian-peace/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1950 6 25일 북한군은 아무도 예상 못한 대대적인 기습공격을 개시하며 남한으로 쳐들어갔다. 김일성의 공산주의자들이 목표로 삼은 것은 분단된 한반도의 무력통일이었다. 한국전쟁 그 자체가 바로 직전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이 낳은 유산이기도 했다.

 

남한은 기절초풍했으며 수도 서울은 곧 맹공으로 쓰러졌다.

 

미국은 군사적으로는 무방비 상태였으나, 외교적으로는 꽤 강단 있게 대처하여 곧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워렌 오스틴 당시 미 유엔대사 역시 날렵하게 움직이며 일요일 꼭두새벽부터 각국 대표단을 집합시켰다. 한편 미국은 북한에 즉각적 공격중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전세계 여론이 사면초가에 몰린 남한 측으로 기울긴 했어도, 안보리에서 미국은 어떻게 불 보듯 뻔한 소련의 거부권 행사를 피할 수 있었을까?

 

이 기막힌 행운의 반전 드라마 속에서, 모스크바 대표단은 당시 유엔 내 중국 공산당의 자리를 확보해줄 요량으로 회의에 대해 보이콧을 행사 중이었다.

 

불과 5년 전 영국, 프랑스, 소련, 미국과 함께 유엔 창립국가였던 터라, (한반도를) 탐내던 민족주의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아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로써 소련은 멋지게 자살골을 넣은 셈이다!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 82호는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만이 기권하며 신속하게 통과되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멀찌감치 뉴욕에서 이루어진 유엔 결의안 때문에 막강한 북한의 공세가 중단되는 일 따윈 없었다.

 

이틀 후, 이사회는 "무장공격을 격퇴하고 국제평화와 안보를 회복하기 위해 대한민국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라 "는 유엔의 군사행동 승인 결의안 83호를 통과시켰다.

 

7 7, 다국적 군사작전 지휘를 위해 태평양 전쟁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임명되었다.


연합군의 거의 90%가 미국인이긴 했지만, 호주, 영국, 캐나다, 프랑스, 에티오피아, 그리스, 터키 등 16개국이 한국에서 벌어진 전투에 동참을 약속했다.


전쟁 초기 남한은 믿기 힘들 정도의 궤멸을 목도했다; 6 28(전쟁개시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얼마 안되어 유엔군은 후일 낙동강(부산) 방어선으로 알려지게 되는 지역에 갇혀버렸다. 이미 한반도 내륙은 악랄하게 한국군과 유엔군의 목을 조여오는 북한의 포위망에 속수무책이었고, 더 이상 뒤로 물러서봤자 바다로 떨어지는 수 밖에 없던 절체절명의 당시를, 한국의 덩케르크라고들 한다.

 

맥아더 장군의 기상천외한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고, 1950년 말 중공군의 개입이 있기 전까지 전쟁의 흐름을 뒤집어 놓으며 북한 깊숙이까지 진격하는 강도 높은 가을 공격이 감행되었다.

 

6.25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이었다. 5년 전 연합군은 제국주의 일본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전쟁이 끝났으니 병사들의 제대와 더불어 경제적 번영이 눈앞에 펼쳐질 일만 남았다고 모두들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는 안중에 없었다. 게다가 반반 갈라서 북은 소련이 남은 미국이 분할 통치 중이었다. 1945년 이 오래된 땅을 외지인들이 위도 38도에서 반으로 갈라놓고, 1948 9월, 북의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과 남쪽의 대한민국이라는 두 개별정부를 구성함으로써 고전적 냉전시대 정치적 속기로 분단을 성문화시켜 버렸다.

 

한국은 무시되었다. 미국은 일본을 점령하고 재건하여 정치적으로 개조시키고, 필리핀을 재활하며,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사이의 내전이 중국 본토를 집어삼키는 모습을 흥분해서 지켜보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

 

한반도 문제는, 말하자면, 일본인들이 점령한 지 반세기나 지난 전후 조선의 지위에 대한 우려들을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아무렇게나 무신경하게 털어버리면서 "적당한 때" 다루면 되는 그런 시답잖은 사안이 되었던 것이다.

 

현 대한민국은 놀라운 사회/경제적 성공 스토리를 창조해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자 한국은 정치적 민주주의 국가로 진화했다. 남북한 둘 다 1991년에 유엔에 동시 가입했으며 놀랍게도 전쟁 통에 북한을 탈출한 실향민 집안 출신인 한국의 반기문 장관은 2007년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

 

한반도는 대결중인 강대국간 이해관계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미국의.

 

한국의 전략적 위상은 최근에 와서야 높아졌다. 부강한 첨단과학기술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은 더 이상 아시아라는 체스판 위에서 한낱 지정학적 부스러기가 아닌 글로벌 경제의 핵심 플레이어로 간주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마르크스주의 군주인 김씨 일가가 통치하는 디스토피아적 사회주의 수렁에 빠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는 북한에 협상 카드를 제공한다.

 

그러나 남북한의 분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1953년 공식적인 평화조약이 아닌 휴전협정으로 마무리되었다. 미국과 한국에게 있어 최종적으로 한국전쟁을 매듭짓는 일은 냉전이 낳은 마지막 유산 가운데 하나로 남아 동아시아의 미래 평화를 담보한다.

 

J. 메츨러는 "분단 동력학: 분단국 외교독일, 한국, 중국"(2014) 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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