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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러시아 지식층 인텔리겐챠와 그들의 역할

[기획특집] 최후로 향하는 사회주의: 소비에트 역사로 전망하는 북한의 몰락 -7회-


러시아에서 지식인, 지식층 혹은 지식계급을 뜻하는 말이 인텔리겐챠다. 19세기 귀족사회 지식층이 무기력과 무능력과 사치에 빠졌을 때에는, 인텔리겐챠는 륨펜이란 단어와 함께 쓰이면서 부정적 이미지를 갖기도 했다. 러시아 문학에 자주 나타나는 무위도식하는 잉여인간과 거의 동일시되기도 했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836년 러시아 시인 바실리 주코프다. 그는 러시아 문학을 세계를 주도하는 문학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되는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선배이자 스승이다. 러시아의 대표적 인텔리겐챠라고 할 수 있는 주코프와 푸쉬킨에 얽힌 일화가 있다. 젊은 천재 후학 푸쉬킨이 시 작법의 기존 룰을 모두 파괴한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발표하자, 주코프는 축하선물을 보내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패배한 스승이 승리한 제자에게’!


이렇듯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관대함은 러시아 지식인들이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다. 이런 예는 드물지 않게 눈에 띤다. 우리에게 검찰관으로 유명한 니콜라이 고골도 푸쉬킨에 대해 러시아 정신의 유일한 현현이다. 그에게 러시아의 자연, 러시아의 영혼, 러시아의 말, 러시아인의 성격이 마치 돋보기 거울에 비친 것처럼 가장 깨끗하게 반영된다라고 칭송했다. 또다른 시인 그리고리예프도 푸쉬킨은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선언했다.






러시아의 위대한 문호이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이렇게 평했다.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책, 특히 문학 작품은 내 것을 포함해서 모두 불살라버려도 된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예외다. 그의 작품은 모두 남겨두어야 한다’. 시기와 질투와 음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상대의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은 진정한 지성이고 관용이다.


정작 톨스토이 자신이야말로 반론의 여지가 없는 세계적 문호다. 2007년 영어권 작가들 125명에게 세계 문학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톨스토이의 장편 안나 카레니나였다고 한다.


오늘 여기에서 논하고자 하는 주제는 러시아 사회와 세계를 이끌어온 지성, 러시아 인텔리겐차에 관한 이야기다. 러시아 시인, 소설가, 학자는 세계가 인정하는 권위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인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러시아 문학을 창조한 주인공들인 작가들을 통해 러시아 인텔리겐챠를 들여다보는 기회를 갖자.


러시아를 친구로 여기건 적으로 여기건, 그들을 알고 이기거나 극복하려면 그들 사회를 이끌어가는 브레인 그룹인 인텔리겐챠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공산 사회주의 체제의 기초이론인 마르크스의 주장을 토대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확립해 거대한 체제실험을 해온 것도 그 뿌리는 러시아 인텔리겐챠에게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길 바란다.


물론 러시아 인텔리겐챠에게 가장 영향을 준 것은 근대 유럽문명을 이끈 프랑스 지성계일 것이다. 러시아 피터 대제가 러시아의 후진성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서구식으로 변혁을 해야한다고 하면서 러시아는 본격적으로 유럽사회에 통합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에카테리나 여제에 의해 계몽주의 사상이 유입된다.


그뿐이 아니다. 푸리에나 생시몽 등이 주창하던 유토피안 사회주의도 접하게 된다. 이후 공산주의를 내세운 독일 마르크스는 유토피안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로 매도하고, 마르크스 자신의 공산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로 명명한다. 이것을 레닌 등 러시아 혁명가들은 행동에 옮겨서 인류역사상 최초의 공산사회주의 실험을 했던 것이다.


프랑스 사상이 러시아로 급격히 밀려든 것은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치고 파리로 진격한 젊은 청년장교들의 반전제정 운동을 통해서다. 러시아 역사에서 데카브리스트 운동이라고 불린다. 발전된 프랑스의 모습을 본 러시아 젊은 장교들은 프랑스대혁명을 알게 되고, 러시아에서도 전제정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푸쉬킨도 이 데카브리스트 혁명에 가담했다가 유형을 가게 되기도 한다.


이 당시의 상황은 바로 톨스토이의 걸작 전쟁과 평화에 생생하게 기록되고 있다. 톨스토이 역시 이 전쟁에 장교로서 직접 참여했다. 작가는 주인공 피에르를 통해 그 시대 인텔리겐챠의 고민을 대변하고 있다.


러시아 인텔리의 관용과 함께 우리는 맥시멀리즘으로 불리는 소위 극단주의 혹은 절대주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인의 의식세계에 드물지 않게 드러나는 이 극단주의는 미술사에 기록된 세계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인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같은 작품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문학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악인의 상징은 전당포 노파 살인자로 구현되기도 한다.





즉 그들은 문제나 상황을 어중간하게 포착하거나 제시하지 않는다. 극단으로 끝까지 몰고간다. , 인간의 불행을 시베리아 감옥 유형에 처한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를 통해 보여주는 솔제니친까지 러시아 문학에 나타나는 인텔리겐챠의 철학과 사유는 이처럼 집요하고 극단적이다.


톨스토이가 인간적 욕구와 내면 심리 묘사의 극단에 도달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념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그들은 절망적 현실의 출구를 기독교적 신에게서 찾는다. 이는 러시아 지성의 정신적 토대인 러시아 정교라는 종교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수 있다.


러시아 문학의 대표적 특징으로 인정되는 리얼리즘은 러시아 지성 인텔레겐챠의 속성일 수도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현대 단편소설과 희곡의 전형을 제시한 안톤 체홉이다. 그는 작가는 문제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지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냉정한 현실을 드라마화하지 않는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언급된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e)’ 현실에서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갈등과 문제를 단번에 갑자기 툭 나타난 신이 해결하는 현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체홉은 단편 반카나 희곡 세 자매등을 통해 종종 주소 없는 편지로 출구 없는 절망적 현실을 묘사하곤 했다. 고아가 되어 모스크바 구두공방에 맡겨진 9살 소년 반카는 죽음처럼 고된 절망적 현실에서의 유일한 출구가 할아버지다. 그러나 어린 소년은 주소의 개념을 모른다. 주소란에 '시골의 할아버지, 콘스탄틴 마카리치에게'라고 쓰여진 소년의 편지는 냉정하게 우체통에 넣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체홉이 추구한 절제된 일상의 미학. 이 절제가 러시아 인텔리겐챠의 또다른 미덕이다. 과장하지 않는, 냉정한 현실 직시야말로 문제에 대한 가장 정확한 인식의 출발이고 해결의 열쇠라고 보는 것이다.


러시아 문학의 위대한 전통이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던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발현되는 것을 보면, 러시아 인텔레겐챠의 정신적 힘은 수세기 동안 그들의 내면세계에 축적되어 쉽게 고갈되지 않도록 체질화된 듯 보이기도 한다.


1933년 이반 부닌의 마을’, 1958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1965년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 그리고 1970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등이 노벨문학상에 선정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닥터 지바고에서 소비에트 혁명을 부정적으로 본 파스테르나크가 노벨상과 조국 사이에서 러시아에서의 추방을 면하기 위해 노벨상을 포기하고, ‘시베리아 수용소의 현실을 폭로한 솔제니친이 94년 러시아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해외로 추방되는 등 소련 당국의 압박은 작지 않았다.


어쨌든, 어떤 체제 하에서든 러시아 인텔리겐챠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사회의 현실과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충실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런 러시아 인텔리겐챠의 힘이 러시아 지성사의 빙하기 소비에트 시대 74년을 극복한 저력이라고 보면 무리한 해석일까.


러시아의 국가정체성과 문화의 특징을 설명하는데 자주 언급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종교적 전통, 러시아 고유의 가치를 추구하는 슬라브주의자들과 러시아는 서구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서구주의자들 사이에 존속해온 개혁논쟁 그리고 러시아의 대자연과 방대한 영토에 대한 귀소 및 회기 본능이 그것이다.


러시아 지성, 지식 인텔리겐챠가 천착해온 이러한 사유의 모티브들은 러시아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격동기와 혼란기에도 구심점이 되고 있는 듯하다. 그 사유의 한 결론에는 러시아적 메시아주의가 있다. 세상을 구원하려면 자신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는 전세계에 루소포비아라는 러시아 공포증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동경을 자아내는 동력이기도 하다.


소비에트 체제 붕괴 후, 러시아는 러시아식 민주주의를 말한다. 슬라브파와 서구파의 갈등과 논쟁은 러시아식 민주주의냐 서방식 민주주의냐의 갈림길에서 현재는 러시아식 민주주의에 기울어져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서방에서는 이를 두고 전체주의 독재시대로의 회기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본주의적 독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면 북한의 지성계는 과연 존재할까. 북한의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방송을 보면, 그런 존재의 흔적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 인텔리겐챠의 관용이나 절대성 지향, 냉정한 리얼리즘 혹은 인간 내면의 본질을 파고드는 철학적 전통 등은 이미 북한 지식인 사회에서는 죽은 듯 보인다.


북한 정권의 김씨 3대 세습은 그 대표적 증거다. 북한 내부의 자체 변혁동력이 제거되었다면, 북한 체제는 이미 껍질만 남아 있는 유령 같은 허상의 사회다. 유령 사회, 허상의 사회는 자체가 이미 신기루다. 유령선이 항해에 지친 선박의 선원들을 괴롭힐 뿐,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어쩌면 올바른 정보의 입김만으로도 그 유령선은 사라질 수 있다. 그 때문에 북한은 철저한 통제사회일 수 밖에 없다. 소련의 글라스노스치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유발하고, 그것이 소비에트 사회를 무너뜨린 것은 적지 않은 것을 시사해준다.



< 맹세희 글로벌디펜스뉴스 편집위원 약력 >


-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언론대학 방송학 박사 수료


주요경력


-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아시아아프리카대학 한국어과 강사

- '러시아의 소리' 한국어 방송부 아나운서

- KBS 라디오 방송작가

- KBS 모스크바 통신원

-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부 모스크바 통신원(필명 정여경으로 활동)

- 뉴스타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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