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세계화의 종말 가져오나

  • 등록 2020.03.18 09: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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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아무도 몰랐던 글로벌 마켓 약점 드러내


지난 16, 세계 최고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외교 • 국제정치 관련 계간지 "Foreign Affairs" 3/4월호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가 알던 세계화를 끝낼 것인가? Will the Coronavirus End Globalization as We Know It?" 라는 제목의 완성도 높은 정치경제 논평이 실렸다. 전세계를 하나로 묶어 국가 및 기업간 상호의존도를 높이고, 촘촘하고 유연한 생산•공급망을 통한 무제한 통상을 거치면 끝없는 번영만 가져다 줄 것 같던 세계화 과정이, 전세계적인 유행병 확산이라는 위기에 직면해서, 필수의약품 대신 신종바이러스를 신속하게 유통하고 있다. 각국의 필수품 사재기와 서로를 향한 여행금지조치들은 전혀 새로운 모습의 세계시장을 만들어냈다.  과연 이 낯선 모습의 글로벌 시스템은 어떤 상황인지, 노출된 취약점들과 그 극복방안에는 어떤 미덕이 필요한지 꼼꼼하게 분석해서 잘 정리하고 있다. 다음은 기사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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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globalization)에 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핵심 공급라인들이 붕괴되고, 세계각국이 앞다퉈 의약품 사재기와 해외여행제한을 서두르면서 고조된 위기는 서로 긴밀히 연결된 글로벌 경제시스템에 대한 전면 재평가를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감염성 바이러스를 급속하게 확산시킨 것도, 기업 및 국가간 깊은 상호의존도를 촉진시킴으로써 이들을 예상치 못한 충격에 더욱 속수무책이 되게 만든 것도 세계화이다. 현재로선, 기업이든 국가든 하나같이 얼마나 허술한지 그 실상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주는 교훈은 세계화 실패에 있지 않다. 오히려 세계화가 가져다 준 온갖 혜택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 혜택으로 인해, 세계화가 취약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수십 년간, 기업마다 불필요한 중복공정을 없애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유례없는 부가 창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세계경제 전반에 걸쳐서 사용되지 않은 자원의 총량까지 감소시켰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방만경영(slack)" 이라 부른다. 평상시 기업들은 이런 방만경영을 유휴의 혹은 허비되는 생산능력 측정 수단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비상시에 방만경영에 대한 지나친 경계는 치명적으로 중요한 안전장치들을 제거해버림으로써 시스템의 상당부분을 불안하게 만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여러 의료•보건관련 분야에서 경험하고 있듯, 안전장치가 확보된 제조 대안이 부족하면 공급망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 필수의료장비 생산업체들이 전세계적인 수요폭발로 혼란에 빠지자, 원자재 확보를 두고 국가간 쟁탈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결과 세계주요 경제국간 역학관계에 지각변동이 나타났다. 신종바이러스에 맞서 싸울 준비가 잘 되어있는 국가들은, 자국을 위해 자원을 비축하거나 그렇지 못한 국가들에 원조를 보내주면서 결과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취약한 효율성

 

세계화에 관한 일반적인 통념은, 그것이 번영하는 세계시장을 만들어내서, 제조업자들로 하여금 필요에 따라 공급업체나 부품회사를 다른 회사로 대체함으로써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이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주장하듯, 기업들이 세계화된 분업을 활용함에 따라 "각 국가의 부" "세계의 부"가 되었다. 분업화는 높은 효율성을 이끌어냈고, 이는 결과적으로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세계화는 또한 상호의존의 복잡한 구조를 발생시켰다. 기업들이 세계적인 공급망을 수용하자, 전세계 경제를 다 함께 연결하는 복잡한 생산 네트워크가 탄생했다. 하나의 특정제품에 들어가는 부품들이 이제는 다른 수십 개 국가에서 생산될 수 있다. 이러한 분업화 추진은 특히나 특수 기술 및 상품의 대체를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생산과정이 세계화되면서, 국가들 또한 더욱 상호의존적이 되어갔다. 왜냐하면 어떤 나라도 자국 경제에 필요한 모든 상품 및 부품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경제는 공급업체들의 방대한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 포함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가 일으킨 세계적인 유행병은 세계화된 시스템의 취약성을 노출시키고 있다. 특히 제조공정상 불필요한 중복이 많고, 제품이 다수의 국가를 거쳐서 유통되던 경제분야는, 위기를 비교적 잘 견뎌낼 수 있었다. 팬데믹 때문에 특정국가의 단독 생산업체가, 필수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부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되면, 나머지는 거의 초토화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유럽 전체 자동차회사들이, 소형전자제품 부족에 애를 태우고 있는데, 이유는 단일업체인 MTA Advanced Automotive Solutions사가 이태리에 있는 공장들 중 한 군데에서 생산이 어쩔 수 없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금 같은 시기에 자기회사를 지키기 위해, 제조업체들이 비축 물품을 쌓아놓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는 많은 기업들이 재고는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애플 社 CEO 팀 쿡의 유명한 격언을 지지하고 있다. 특정 제품 제조를 위해 필요한 부품창고에 돈을 내는 대신, 이 회사들은 그 이름으로 알 수 있듯 "적시(just-in-time)"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유행병의 한복판에서 적시공급은 너무 늦어버린 공급이 될 수 있다. 공급망 문제의 부분적인 결과로, 2월 랩탑의 글로벌 생산량이 50%나 떨어졌고 스마트폰 생산은 다가오는 1/4분기에 12% 감소했다. 두 제품 모두 아시아의 전문제조업체들이 만드는 부품으로 제작된다.

 

 

치명적인 부족

 

전자제품 제조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생산차질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을 방해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바이러스성 RNA를 감지하는데 사용하는 진단키트가운데 핵심부품인 시약 같은 필수의료품이, 여러 나라에서 모자라거나 바닥나고 있다. 2개 회사가 필수적인 시약 생산을 장악하고 있다: 덴마크 회사인 Qiagen (최근 미국의 거대 Thermo Fisher Scientific 사에 인수됨)과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Roche laboratories. 양사 모두 자사 제품에 대한 비정상적 수요급증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공급부족량 때문에 미국 내 진단키트 생산이 늦어졌는데, 이는 미국이 뒤늦게야 시약에 필요한 화학약품 구매를 위해선 다른 나라들 뒤에 줄을 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종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어떤 행정부들은 각자 갖고 있는 최악의 본능에 굴복하고 있다. COVID-19 발병이 시작되기 전에도, 중국 제조업체들은 전세계 의료 마스크의 절반을 만들었다. 바이러스 사태 결과 이 업체들이 생산을 늘렸지만, 중국 정부는 해외에서 대량의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수입하는 한편, 전국의 모든 마스크 공급물량을 효과적으로 전부 사들였다. 중국은 확실히 그것들이 필요했지만, 그런 사재기의 결과는 다른 나라들의 바이러스질환 대처를 방해하는 공급부족사태를 불러왔다.

 

유럽 국가들의 행태도 별반 나을 게 없었다. 러시아와 터키는 의료용 마스크와 인공호흡기의 수출을 금지했다. 심지어 독일은 회원국가간 무제한 자유무역이 가능한 단일시장을 확보한 EU회원임에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정부는 확보할 수 있는 모든 마스크를 전량 손에 넣기 위해 더 간단한 조치를 취했다. EU 관료들은 그런 행동들이 결속을 훼손하고 EU로 하여금 신종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상식적인 접근법을 채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불평하지만, EU회원국들은 그저 무시할 뿐이다.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이러한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beggar-thy neighbor)전략이 고조될 조짐을 보이는데, 이러면 긴급의료품의 글로벌 공급체인이 막혀버린다. 이는 미국에게 있어 정말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 미국은 팬데믹에 일관성 있는 대처방안을 채택하기에 너무 늦어버렸고, 앞으로 필요하게 될 물품의 대다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국민이 쓸 수 있는 비축마스크분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2009년 이후 보충된 적이 없어서 요구될 수 있는 숫자의 극히 일부만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별로 놀라울 것도 없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보좌관,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는 미국의 제조업 역량과 필수 의약품을 위한 공급체인을 집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맹들을 위협하고 세계무역으로부터의 철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저런 물품부족을 사용해왔다. 그 결과, 독일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국내에서 사용하기 위해 독일회사에 의해 개발중인 신종 백신을 철저하게 전량 구매하려는 공격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베를린은 현재 백신에 대해 대항적 매입주문을 하거나 미국 판매금지를 고려 중이다.

 

바이러스의 영향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통합에서 후퇴하기 위해 팬데믹을 사용해온 반면, 중국은 기꺼이 이 과정에서 리드하는 모습을 드러내는데 위기를 사용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첫 번째 피해국가로서 중국은 석 달 넘도록 지독하게 고생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 모든 다른 나라들이 그 병에 굴복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중국 제조업체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제조업자 중 많은 수가 이제 다시 일어서서 달리고 있지만, 위기에 처한 국가들의 요구에 부응하기에는 지나치게 약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중국에게 다른 나라들의 행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짧지만 거창한 기회를 제공한다.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 초기 실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신종 바이러스와 싸우는 법을 터득했고, 비축한 장비들을 쌓아놓고 있다. 이는 귀중한 자산이며, 중국은 요령껏 효율적으로 사용해왔다

 

3월 초 이태리는 치명적인 부족사태로 인해 의사들이 어떤 환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할지 어떤 환자를 죽게 놔둘지 가슴 아픈 결정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자, 이웃국가들에게 응급 의료장비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중 단 한 국가도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산소호흡기, 마스크, 방역복, 탈지면 등을 판매하겠다고 나섰다. 러쉬 도시(Rush Doshi)와 줄리안 거월츠( Julian Gewirtz) 같은 중국 전문가들이 주장하듯, 선의를 베풀고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베이징은 스스로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맞서 싸우는 글로벌 전투의 리더로 그리고자 한다.

 

신종 바이러스 대처에 꾸물거리며 유럽으로부터 여행객을 막는 것이 이 땅에 급속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전염병에 맞서는 최선의 방책이라 생각하는 트럼프 행정부에게 있어 이는 어색한 짓이다. 공공재의 글로벌 공급자로 봉사하는 건 고사하고, 미국에겐 다른 나라에 제공할만한 자원조차 거의 없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곧 알리바바의 공동창업주인 잭 마(Jack Ma)가 후원하는 50만 세트의 진단키트와 백만 장의 마스크를 중국에서 구호물품으로 받게 생겼다

 

세계화의 새로운 지정학

 

전세계 정책결정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그 사후문제를 처리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동안, 그들은 세계경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놀라운 효율성 뿐만 아니라 비상한 취약성까지 만들어낸 세계화는 국경을 가로질러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노동분업을 요구하고 있다. COVID-19 같은 팬데믹 충격은 그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의 특정 상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단일 공급원 공급자들이나 세계 여러 지역들은 위기 의 순간에 예상치 못한 약점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는 공급망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앞으로 다가올 몇 달 동안 훨씬 더 많은 취약점들이 폭로될 것이다

 

그 결과 세계 정치판에 어떤 전환이 생길 수도 있다. 시민들의 보건과 안전이 위험에 처하게 되어, 각국은 수출을 막거나 필수적인 물품을 장악할 수도 있다. 설령 그렇게 하는 것이 동맹이나 이웃에 해가 된다 하더라도. 세계화로부터의 후퇴는, 여유 있는 국가로 하여금 다른 나라에 넉넉한 관용을 베풀게 허용함으로써 그러한 아량이 후에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되게 만들 수 있다. 아직까지, 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글로벌 대응에 있어 지도자였던 적이 없었으며, 최소한 그런 역할 중 일부를 중국에게 양도해버렸다. 지금의 팬데믹은 세계화의 지정학을 재편하고 있지만, 미국은 부적응 중이다. 대신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끙끙 앓아 누워있다.


이주희 dane72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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