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변, 11월 23일 ‘신의주반공학생의거’일을 ‘북한인권의 날’로 제정해야

  • 등록 2020.11.29 02:20:03
크게보기

- 세계 최초 반소련, 반공산주의 학생운동
- 소련군이 전차, 기관총, 야크기(전투기) 기총사격 등으로 24명 살해
- 북한, 2010년 11월 23일에 연평도 포격
- 문재인 대통령, 11월 23일에 휴가
- 이인영 통일부장관, 11월 23일에 남북경제협력을 북한에 제안
- ‘사람중심’, ‘사람이 먼저다’, ‘인권변호사’는 공산주의자들의 선거용 기만전술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대수장), 사회정의를 바라는 교수모임, 대한민국수호비상국민회의, 나라지킴이 고교연합회(고교연합), 나라사랑 전직 외교관모임, 자주시민연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의사들의 모임(자유수호의사회), 대한민국통일건국회,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성통만사), 팬코리안네트워크 가오리마루, 역사정립연구소, 장진호전투기념사업회, 한미역사문화연구원, Svobodny Pilgrim Party, SFKA(뉴질랜드), 북한인권협의회(캐나다), 북송재일교포협회 등 국내외 단체들이 11월 23일(월) 오전 10시 서울 자유총연맹 주차장내 ‘신의주반공학생의거’ 탑에서 추모식을 갖고 북한 주민들이 피를 흘린 11월 23일을 ‘북한인권의 날’로 지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1945년 11월 18일 북한에 설치된 인민위원회가 소련군과 북한공산당을 찬양하는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때 한 학생이 연단에 올라가 소련의 민족말살 정책과 공산주의자들의 주민 학살 등에 항의를 하면서 모여 있던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에 소련군과 김일성 일당은 무력으로 진압을 했고 이 과정에서 교회 장로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은 1945년 11월 23일 오후 2시 6개 중학교 학생들이 3개 조로 나누어 인민위원회 사무실, 보안대 등을 점거하고 기밀문서들을 탈취하였으며 인민위원회로부터 일부 사과를 받아내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소련군은 전차, 기관총 등을 동원하여 시위에 참가한 신의주내 6개 중학교 학생 약 3,500여 명에게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가했다. 심지어 전투기(야크기)를 동원하여 공중에서 기관총을 시위대들에게 발포를 하여 24명이 사망하였다.

김일성은 학생들을 체포할 목적으로 학생들에게 모두 학교로 돌아오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선전하여 실제로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자 그들을 체포하여 소련군에 넘겼고, 약 1000~2000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시베리아로 끌려가 대다수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서 사망하였다.




이 당시 해방군으로 북한에 진입한 소련군은 북한 지역 내에서 부녀자에 대한 강간, 약탈 등 횡포가 극에 달했으며,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도 함께 약탈에 가담했다. 일본은 만주를 경영할 목적으로 북한지역에 공장 및 댐 등 많은 공업시설들을 건설하였었기 때문에, 북한지역 주민들은 남한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또 최초의 한글성경을 번역한 존 로스 선교사 등 기독교 선교사와 성경이 신의주를 통해서 한반도로 반입되었기 때문에 이미 이 지역은 사상적으로도 많이 깨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군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 추종세력의 횡포를 북한 주민들이 받아드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신의주반공학생의거가 발생하였고, 이 불길이 평양, 함흥 등으로 번지게 되었다. 북한 전역에서 반소련, 반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김일성은 1950년 10월 19일 유엔군에 평양이 함락되자 중국으로 도주하면서 함흥지역에서 약 12,000여 명을 학살하는 '함흥대학살'을 지시하였다.

이는 1950년 12월 11일부터 단행된 흥남철수작전 당시 약 20만 명에 달하는 북한 주민들이 미군과 함께 남한으로 철수하겠다고 흥남부두로 몰려든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193척의 선박 중 12척을 징발하여 약 10만 여명을 태우고 거제도로 철수하였지만 나머지 약 10만 여명은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 수 없다며 바닷물에 뛰어 들어 자살하거나, 걸어서 남하를 하다가 추격하던 중공군과 북한군에 잡혀 거의 모두 몰살 당하였다.

북한에서 남한지역으로 내려온 이들 중에는 일제시대 당시 고급 기술자와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남한지역에 각종 기술을 전파하였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들의 도움으로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수월하게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미국은 한국전 당시 178만 9000명의 미군을 파견하였고 670억 달러의 전비 및 복구 비용을 지출하였다. 또 미국의 기독교 단체들은 한국의 교회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막대한 구호물자들을 보냈다. 이 모든 것들은 현재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세계 6위의 군사강국으로 성장하는데 디딤돌이 되었다.




'신의주반공학생의거' 생존자들이 만든 '서북청년단'과 '백골부대' 그리고 '국군의 날'

관서지역과 관북지역의 청년들이 남한지역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기 위해서 결성한 단체가 ‘서북청년단’이었으며, 이들은 남한내 좌익세력인 남로당 등 공산주의자들의 테러모의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서북청년단을’ 조직폭력배로 가르치고 있으나, 그것은 의도적인 역사왜곡이다. 

이들이 백골이 되어서도 공산주의와 싸우겠다며 만든 부대가 오늘날의 ‘백골부대‘이며 백골부대가 38선을 통과한 날인 1950년 10월 1일을 기념해서 ’국군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북한, 신의주반공학생의거 날인 11월 23일에 맞추어 연평도 포격 '문재인은 휴가'

북한은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를 포격하여 우리 해병대원 2명과 국민을 사망케 했다., 2020년 11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연평도 포격 1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휴가를 갔으며,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11월 23일에 남북경제협력 구상을 발표하였다. 

18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이 16년 연속 채택되어 북한의 인권유린을 규탄하였지만, 문재인 정부는 침묵한 것을 넘어 북한주민을 탄압하는 김정은 정권의 배를 불려주는 남북경제협력을 제안한 것이어서 문재인 정권이 북한에 약점을 잡힌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낳고 있다.





’신의주반공학생의거‘는 2차 대전 이후 소련군 점령지에서 자유와 인권을 요구하면서 일어난 최초의 항쟁으로서 김일성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고, 북한지역 및 남한지역에서의 반공산주의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1956년 ’반공 학생의 날‘로 지정하였고, 1968~1969년에는 기념우표까지 발행했다. 그리고 교과서에도 소개가 되었고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가적으로 매년 기념행사가 열렸으나, 1973년 각종 기념일이 통폐합되면서 국민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현재 대한민국은 법치와 인권이 뿌리부터 위협받고 있지만, 그 근본 원인도 인권지옥에서 신음하는 2,500만 북한주민의 인권을 도외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중심', '사람이 먼저다', '인권변호사'는 공산주의자들의 기만전술

’사람중심‘, ’사람이 먼저다‘ 구호를 외치던 인권변호사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은 4년이 넘도록 북한인권법을 사실상 무력화 시켰고, 2019년 11월에는 귀순한 탈북선원들을 비밀리에 강제북송하여 세계를 경악케 했으며 대한민국의 헌법과 국격을 훼손시켰다.

또 2020년 9월에는 대한민국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하여 사살되고 시신에 기름을 붓고 태우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문재인 정권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 ’사람중심‘, ’사람이 먼저다‘란 구호가 선거에서 표를 훔치기 위한 사기였음을 입증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북한에 의해 총살 당한 해양수산부 직원에게 월북 프레임을 씌워 책임을 회피한 것은 물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빠졌다.





문재인 정권은 드루킹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통해 법치주의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등 대한민국의 헌법적 토대를 완전히 무력화 시켰다. 

한변 등 국내외 단체들은 북한주민 스스로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인권을 위한 운동의 효시를 이룬 이날을 맞이하여 ’북한인권의 날‘로 선포하고, 세계최악의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새로운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신의주반공학생의거‘ 당시 생존 학생이었던 김용선 어른은 작년 행사에는 참석하여 각종 증언을 하였으나, 올해는 건강 악화로 참석하지 못하였다.




성상훈 gdwatch21@gmail.com
Copyright @2014 Global Defence News Corp. All rights reserved.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PC버전으로 보기

글로벌디펜스뉴스,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영동 114 영진빌딩 4층 (전화 : 02-711-9642) 이메일 : gdwatch21@gmail.com 발행인/편집인 : 성상훈 사업자 등록번호 : 105-88-04046 언론등록번호 : 서울 아03189 (2014년 6월 16일 등록) 청소년보호담당관 : 성상훈(gdwatch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