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검 '해검', 물위를 가르다

민·군 기술 적용사업인 연안감시정찰 무인수상정 ‘해검(海劍)’의 시연회가 지난 4월 27일 부산 작전사령부에서 열렸다. 무인수상정은 위험하고 인력 소모가 많은 해상 업무를 무인함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사업으로, 개발이 완료되면 군과 민간에서 두루 사용될 예정이다.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극복하며 시험운용을 진행

무인수상정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 북한과 마주한 해역에서 24시간 감시정찰과 수중탐색 임무를 수행해 인명 보호와 전력 증강에 기여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민간에서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서 기승을 부리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활용된다. 또 각종 재난·재해 상황에서 구조·구난 활동을 지원하거나 해양조사에도 투입하는 등 활용 범위가 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IG넥스원 기계연구소 산하 로봇PM팀을 주축으로 항공연구소, C4I연구소, 그리고 기타 소프트웨어 개발, 협력사 등 다양한 인원들은 작년 12월 선체 제작이 완료된 시점부터 시험운영을 위해 울산에서 숙식을 하면서 개발에 매진해왔다. “방위사업청이 주관하고 민군협력진흥원과 해군, LIG넥스원이 참여한 이번 사업은 2015년부터 시작됐고 작년 말에 제작을 완료했습니다. 선박업체를 정하고 체계장비를 올리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시험운용을 진행해오고 있어요. 로봇 PM팀이 사업을 주관하면서 설계와 전장시스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체계통합 등의 업무를 진행했죠.” (유지훈 연구원)

원병재 수석연구원과 유재관 수석연구원이 설계를 담당했고 박재홍 선임연구원과 유지훈 연구원은 무인수상정의 시운전을 위해서 선박운전면허까지 취득했다. 선체 제어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한 블루텍의 김열상 책임연구원을 비롯해 다양한 협력개발사 직원들도 작년 12월부터 로봇 PM팀과 동고동락하면서 해상시험과 통신음영 시험, 사전시연 준비에 힘을 보탰다. 살을 에는 겨울 바다의 바람,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등 혹독한 환경 속에서 시험을 진행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고생했지만 맡은 바 책임을 묵묵하게 수행했다.

자율 운항 시스템과 고품질 영상 촬영이 강점

무인수상정의 핵심기능은 자율 운항 시스템으로 바다의 복잡한 지형을 파악하고 장애물을 회피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고성능 전자광학 적외선 장비(EO-IR)인 3축 카메라를 장착해 흔들림이 심한 해상에서도 고품질의 영상을 얻을 수 있으며 수많은 센서를 장착해 사각지대를 최소화했다. 기계설계를 담당한 이원혁 연구원은 설계 단계가 가장 어려웠다고 이야기했다.

명명식 날짜가 다가오면서 각 부서의 지원인력들도 울산에 속속 도착해 회피기동과 선회, 직선주행 등 마지막 해상시험을 진행했다. 현장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나 바람이 불고 파고가 높아서 출항하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아무래도 선체를 설계하는 일은 처음이었고 설계가 완료된 이후에는 엔진을 무선으로 조정하는 엔진제어가 가장 어려운 난제였습니다. 시험을 진행해야 하는 바다의 상황은 인력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하늘이 허락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 와중에 시험하면서 무인수상정을 스쳐 지나간 돌고래들이 기억에 남네요.” (이원혁 선임연구원)

무인 수상정의 이름은 ‘바다를 가르며 우리 해양을 수호하는 병기’라는 의미를 담아 명명된 ‘해검(海劍)’으로 정했다. 정찰 감시가 주 업무이긴 하지만 ‘바다의 검’이라는 이름처럼 위협사격 용도의 RCWS(원격조종무장체계)를 장착하기 위한 시험도 이루어졌다. 무인수상정은 육상기지 또는 항해 중인 함정의 통제소에서 원격으로 조종하거나 사전에 웨이포인트를 설정하고 목표지점까지 자율 운행할 수 있다. 연안 작전기지 주변의 레이다 사각지대와 레이다로 탐색이 되지 않는 영역에 접근해 파악하는 감시정찰 임무를 담당하게 된다.

무인수상정의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

4월 27일 부산에서 방위사업청과 해군, 그리고 LIG넥스원 및 기타 협력사의 주요 인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해양 무인체계의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연안감시 무인수상정의 명명식 및 시연회'가 열렸다. 이 자리는 행사에 참석한 귀빈들에게 무인수상정의 시연모습을 직접 선보이고 '해검(海劍, Sea Sword)'이란 이름을 공식적으로 부여받는 자리였다.

LIG넥스원 강동석 기계연구소장의 건조 경과 보고가 끝난 후 무인수상정 명명식 및 시연회에 참석한 민 · 관 · 군 모두가 무인수상정의 시연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이 동영상은 명명식을 일주일 앞두고 개발에 참여한 모든 연구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울산 온산항 근처 방파제에서 촬영됐다.

시험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기 까지 오랜 기다림 끝에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이 되어 출항한 무인수상정은 날렵하게 파도를 넘어 바다를 가로질렀다. 용선한 어선에 통제콘솔을 싣고 함께 출항해 무인수상정을 운용했고, 더 역동적이고 현실감 있는 모습을 담기 위해 드론 영상촬영팀까지 가세했다. 모선의 통제에 따라 직선주행, 선회 등 다양한 기동을 선보이는 무인수상정을 드론이 따라 잡아 촬영했기 때문에 참석한 사람 모두 무인수상정의 운용 개념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무인수상정 사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명명식이 끝나고 나면 지속적인 시험운용을 통해서 운용 개념을 확정하고 2019년에 개발을 완료할 예정입니다. 어렵고 위험한 일은 아무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개발에 임했어요. 무인 함정과 유인 함정간 협업을 통해 해군의 전투력도 향상되고 긴장감이 높은 서해 NLL 인근 해역에서 활용도가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지훈 연구원)

해양 무인화 분야는 2020년 총 시장규모가 약 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유망한 미래 산업이다. 이번 ‘해검’의 선도적인 개발은 향후 해양 무인화 분야에 대한 국내 기술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세계 시장에 진입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해가 완전히 진 이후에도 서치라이트를 켜고 늦은 밤까지 시험을 계속 진행하던 연구원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남은 개발 과정도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